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5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노동시장 개혁 과제 중 하나로 직무급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생산가능인구 감소 위험에 대처하려면 정년을 연장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과 같은 과도한 연공급제(호봉제) 아래에선 기업 부담만 늘릴 공산이 크다. 경직된 호봉제 문제를 풀어야 청년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맥을 제대로 짚었다고 볼 수 있다.
직무급제는 업무 성격과 난도에 따라 임금 수준 및 체계를 달리하자는 것이다. 초격차 경쟁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산업 현장에서 생산성 향상을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국내에선 호봉제 관행이 너무나 견고하다. 공공기관 가운데 94.2%, 종업원 1000명 이상 기업 중에는 70.3%가 호봉제를 시행하고 있다. 선진국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전근대적 임금체계라는 지적에도 꿈쩍 않는다.
공정한 보상 없이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임금체계 개편을 공언하지 않은 역대 정부는 없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까지 추진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성과연봉제를 폐지했지만, 대안으로 공공기관 직무급제를 꺼내 들었다. 문제는 말잔치뿐이었다는 점이다. 거대 노조의 반발에 ‘노사 합의를 통한 자율 추진’으로 후퇴해버렸고, 직무급제 도입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찔끔 반영하는 데 그쳤다. 현재 한국관광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18개 공공기관(전체 340개 중 5.8%)만이 직무급제를 실시 중이다. 그나마 시범사업에서 한발짝도 못 나갔다.
호봉제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노동개혁 핵심 과제란 점에서 이번엔 제대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공공성 훼손, 임금 감소 등 노조의 온갖 반대 논리를 넘어서야 한다. 한 번 동력을 잃은 과제에 재시동을 거는 것이고, 민간부문에까지 임금체계 개편을 확산하려는 만큼 전략적 접근도 필요하다. 호봉 자동승급 폐지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은 귀 기울일 만하다. 명확한 직무분석은 물론 직무의 상대적 가치를 순위로 매기는 직무평가 등 꼼꼼하게 준비할 사항도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성과연봉제가 파탄나면서 기껏 연봉제를 도입했던 공공기관들이 호봉제로 유턴한 기억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명분과 구호만 앞세우다간 이전 정부들의 실패를 또다시 반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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