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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가이트너의 교훈…은행, 배당 늘려야 위기에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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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피털, 캐피털, 캐피털.”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첫 재무장관을 지낸 티머시 가이트너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외우고 다녔다는 ‘만트라(mantra·주술문)’다. 가이트너는 미국의 금융위기 극복 과정을 돌아보며 쓴 2014년 회고록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은행들이 위기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충분한 자본(캐피털)을 확충하는 것”이라며 주술문의 의미를 설명했다.

가이트너가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건 2009년 1월이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의 충격이 여전히 금융시장을 짓누르고 있었다. 가이트너는 사면초가였다.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 AIG 등 위기에 빠진 금융회사를 정부가 빠르게 국유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월스트리트의 고위직들이 여전히 고액의 보너스를 챙겨가는데 정부가 눈을 감고 있다는 비난 여론도 거셌다. 하지만 가이트너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기가 오면 정부가 사적 계약을 무력화시킬 것이라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면 안 된다고 봤다.


그의 처방은 스트레스 테스트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트레스 테스트를 한 뒤 결과에 따라 은행들이 필요한 만큼의 자본을 시장에서 유치하도록 하고, 그래도 모자라면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 덕분에 미국 주요 은행들은 중동과 아시아의 국부펀드로부터 자본을 유치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가이트너가 지양한 게 있었다. 은행들의 배당 억제다. 상황이 가장 심각했던 씨티그룹을 제외하곤 배당을 금지하지 않았다. 가이트너는 “배당하지 못하게 하면 은행 주식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떨어져 위기 시 자본 확충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자본 확충을 위한 배당 억제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은행들은 어떨까. 가이트너의 기준으로 보면 한국 은행들은 위기 시 증자를 통해 자본을 확충하기 매우 어렵다. 투자 매력도가 너무 낮아서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은행 지주사들의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36배였다. 미국은 1.61배다.

자본총계(순자산) 대비 주가를 나타내는 PBR은 기준이 1배다. PBR이 1배 미만이라는 건 주주들에게 돌아갈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주주들의 기대 수익률(자본비용)에 비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PBR이 1배 미만인 기업의 경영진은 ‘이익률 낮은 사업에 현금을 재투자하지 말고 배당으로 돌려달라’는 주주들의 요구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의 배당 성향은 극히 저조하다. 4대 시중은행의 주주환원율(배당과 자사주 매입 포함)은 지난해 26%로 해외 은행 평균인 85%에 크게 못 미쳤다.

국내 은행들의 주주환원율과 PBR이 낮은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월 코로나19에 대응한다며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순이익의 20% 안에서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신한금융지주를 제외한 대부분 은행이 20% 수준에서 배당을 결정했다.

금융위원회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거시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은행들의 손실 흡수 능력을 점검하겠다는 의도다. 시의적절한 조치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이번 스트레스 테스트가 안 그래도 낮은 배당을 더 억제하는 결과로 이어질지 우려하고 있다. 당국은 “배당과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은행들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사실 정부와 정치권이 문제 삼고 있는 은행들의 ‘이자 장사’도 적극적인 주주환원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배당을 줄이면 자기자본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져 ROE가 하락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ROE를 높이거나 유지하기 위해 예대마진을 높일 수밖에 없다.

배당도 억제하고 이자 장사도 제한하면 투자자들은 한국의 은행주를 계속 외면할 것이다. 진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외부 투자자들로부터 자본을 유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은행들이 공공성과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곳에 자원을 배분하는 금융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적극적인 주주환원을 통해 투자 매력을 높여야 한다. 은행 경영진과 금융당국의 관심은 ROE와 PBR에 맞춰져야 한다. 그래야 진짜 위기가 왔을 때 대처할 수 있다는 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을 대공황의 위험에서 건져낸 가이트너가 던지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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