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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프리즘] 음의 소득세 실험도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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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이달 들어 시작한 ‘안심소득’ 시범사업은 정치적 목적에서 출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보궐선거와 올해 지방선거에서 내건 주요 경제공약이 안심소득이었다. 안심소득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면 저소득층에 지급하는 보조금이다. 중위소득의 85%에 모자라면 모자라는 소득의 50%를 주는 것이다. ‘안심’이란 말은 주관적 표현이며 정치 구호로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 시장이 표를 좀 더 얻기 위해 내걸었다고 해서 이 시범사업을 평가절하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정책실험이란 측면에서다. 5년간 실험해 보고 그 결과를 충분히 분석한 다음 정책으로 도입할지 말지 결정하겠다는 얘기다.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대선 후보 시절 실험도 없이 전 국민에게 연간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주겠다고 나선 것과는 차이가 크다. 정책실험의 모양새도 그럭저럭 잘 갖췄다. 총 800가구의 표본집단과 1600가구의 비교집단이 구성된다. 실험을 주도하고 결과를 연구하는 자문위원단엔 국내외 학자 31명이 참여한다. 실험에 엄청난 돈도 들지 않는다. 5년간 총사업비는 224억6400만원이다. 1년으로 따지면 45억원이 채 들지 않는다.

다음으로 실험 대상 가구엔 기존 복지제도를 일부 배제한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대표적인 것이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다. 기초연금 청년수당 등도 일부 차감한다. 이 때문에 ‘퍼주기’라는 비판은 곤란한 측면이 있다. 다만 국민연금 실업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 아동수당 등은 유지된다.

서울시의 이번 사업은 ‘제한적인 음(陰)의 소득세’ 실험으로 볼 수 있다.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는 밀턴 프리드먼이 1962년 주장한 사회보장제도다. 저소득층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가 내놓은 방안이다.

음의 소득세는 면세점을 정하고 면세점 이상의 가구는 소득세를 내고, 면세점 이하는 보조금을 받는 것이 골자다. 이 보조금을 음의 소득세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보조금을 받는 모든 가구엔 기존 복지제도를 철폐하는 것이 특징이다.

음의 소득세는 1969년 미국에서 도입 문턱까지 갔다. 닉슨 행정부가 음의 소득세를 담은 정책을 내놨다. 프리드먼은 이 정책을 지지했지만 나중에 의회 청문회에선 반대로 돌아섰다. 기존 복지제도를 유지하는 쪽으로 정책이 변질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기존 보조금 수령자들의 반발을 두려워했다.

프리드먼은 기존 복지제도 폐지를 전제로 음의 소득세를 시행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는 동료 경제학자 1200명이 낸 음의 소득세 시행 촉구 청원에도 서명하지 않았다. 기존 복지제도를 없앤다는 명시적 문구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세계적으로 음의 소득세를 시행한 나라는 없다. 기존 복지제도에 음의 소득세 성격을 부가한 근로장려세제(EITC)만 도입했을 뿐이다.

서울시의 이번 실험 밑그림을 그린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안심소득에 대해 정치적 실현 가능성이 높은 대안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만큼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부작용을 예상할 수 있다. 서울시 설명대로 생계 주거 등 기존 복지제도의 일부만 배제하고 대다수를 유지한다면 대상자로 선정된 사람이 애써 일자리를 구하려 동분서주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큰돈이 들지 않는 정책실험이라면 프리드먼이 구상한 대로 한번 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통계학 기법을 이용해 면세점을 정하고 보조금만 받는 500가구와 소득세만 내는 1000가구를 선정해 3~5년간 비교분석하는 것은 웬만한 경제학자라면 다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관건은 이를 현실에서 실험해 볼 수 있는 정치인이나 행정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자유주의 경제관을 가진 지방자치단체장이라면 도전해볼 만한 일이다. 만약 음의 소득세로도 근로의욕을 고취할 수 없다면 도입하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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