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지난 8일 오전 지방 선거유세 도중 총격을 받고 사망한데 대해 일본 내부에서도 경호체제의 총체적인 문제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8일 '유세 경비에 구멍..용의자 접근에도 제지 없어'라는 제목의 전면 기사를 통해 "현장의 경비 체제와 요인 경호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아베 전 총리가 총격을 받은 가두연설 회장은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 앞 도로 중앙이다. 주변에 대형 쇼핑몰이 있고 시민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어서 과거 선거에서도 연설 회장으로 사용되던 장소다.
하지만 도로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기 때문에 경호에 취약한 지점으로 지적된다. 이날 아베 전 총리가 높이 30㎝의 간이 연설 단상을 사용한 탓에 주변인들과 구분도 쉽지 않았다.
SNS 등에 투고된 영상을 보면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41세)는 도로 건너편 십수미터 떨어진 장소에 나타나 잠시 연설을 듣고 있다. 이후 천천히 차도를 건너 아베 전 총리 오른쪽 뒷편으로 접근하면서 사제 총으로 2발을 쐈다.
이 과정에서 용의자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경호실패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요인경호에 정통한 전 경찰간부는 "용의자가 차도에 나타났을 때 경찰관이 검문을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요네무라 도시로 전 경시총감은 BS후지TV에 출연해 "경호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전 지시가 철저하지 않은 것 같다"며 "경찰의 대실패"라고 말했다.
경찰의 경비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역대 최장수 총리를 역임한 아베 전 총리는 중요한 경호 대상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경비체제는 나라현 경찰이 작성했다. 중요한 경호대상이 지방 유세에 나서면 일반적으로 현지 경찰이 경비체제를 작성하고, 경시청 소속 경호원과 현지 경찰관이 함께 요인을 경호한다.
경찰당국과 정당 관계자가 연설장소의 특성과 청중의 수 등에 따라 경찰관 배치 등을 협의하고 위험물을 사전에 탐지한다.
경찰청은 이날 구체적인 인원 배치 상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산케이신문은 "청중 등 주변 경비는 나라현 경찰이 담당하고 나라현 경찰의 경호요원 1명과 경시청 소속 경호원(SP) 1명이 아베 전 총리를 밀착경호했다"고 전했다.
일본 현지에서는 경시청과 현지 경찰의 협조체제가 원활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경호 방식의 허술함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오사나이 히데토 국제보디가드협회 아시아지구 총괄책임자는 "해외에서는 총격에 대비한 훈련을 철저히 실시하는 반면 일본의 요인경호는 칼과 둔기 공격이 전제"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요인 경호원을 'SP(세큐리티 폴리스)'라고 부른다. 경시청 경비부 경호과에 소속돼 총리와 대신 등 요인을 경호한다. 구체적인 선발기준과 인원수는 공개돼 있지 않지만 남성은 신장 173㎝ 이상, 유도와 검도 유단자, 일정 수준 이상의 사격술 등이 기본 요건으로 알려져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1975년까지만해도 일본에는 별다른 경호조직이 없었다. 이 해 1975년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 장례식장에서 미키 다케오 당시 총리가 괴한에게 폭행당한 사건을 계기로 경호조직이 창설됐다. 미국 대통령을 경호하는 세큐리티서비스를 모델로 삼았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