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창단된 몬트리올 심포니가 14년 만에 한국에 왔다. 지휘자 라파엘 파야레는 이번 5~8일 한국 투어 프로그램을 두고 ‘오마카세(주방장 특선 코스)’라 일컬었다. 말 그대로 잘 차려온 작품들이었다. 극도로 정밀한 최고 수준의 연주는 아니었지만 재밌고 기발한 요소가 많았다. 5일 롯데콘서트홀 공연에서 이들은 버르토크 ‘중국의 이상한 관리’ 모음곡과 드뷔시 ‘바다’로 악단 고유의 현란한 색채를 자랑했다. 프레이즈(짧은 음악적 단위)마다 새로운 표정을 꺼낼 수 있는 이 단체의 정체성은 25년(1977~2002년)간 음악감독으로 재직한 스위스 출신 명장 샤를 뒤투아의 유산이 분명해 보였다.
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의 1부는 힐러리 한이 협연한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었다. 비올라의 트레몰로 위로 한이 연주하는 1주제가 흘러나왔다. ‘Sognando(꿈꾸듯이)’를 표현하기에 그의 연주는 꽤 실존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만의 마법 같은 설득력은 작품에 몰입하게 했다. 같은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여도 브람스나 베토벤의 피아니시모와 분명 성질이 달랐다. 프로코피예프가 그 순간 딱 필요로 하는 소리였다.
2주제에선 각 마디의 운율감을 지켜내면서 세부적인 표현들까지 모두 챙겼다. 부드럽지만 호소력이 짙었다. 2악장 스케르초에 이르러서는 기교를 초월해 스케르초 본연의 맛을 꺼내 놓았다. 유쾌하고 즐거웠다. 한의 굉장한 테크닉은 ‘음악’을 성취하기 위한 발판이었다.
2부 연주곡은 말러 교향곡 5번. 1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앙상블이 필요한 말러에서 이들은 고전했다. 템포 등 지휘자가 원하는 음악에 단원들이 매순간 톤과 밸런스를 맞추기 쉽지 않았다. 특히 3악장 스케르초에서 이런 어려움이 가장 잘 드러났다. 지휘자는 오락적 요소가 가미된 리듬으로 이 거대한 스케르초를 지탱했는데 단원들이 소화하기엔 버거워 보였다.
하지만 작품이 말러라고 강하게 외치는 순간이 있었다. 지휘자는 여러 프레이즈가 시시각각 엮이는 동안에도 그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2악장에서 첼로의 고독한 연주 후 등장하는 모티브들이 그랬다. 이들이 결합하는 방식이 흥미진진했다. 호른의 장송곡 테마를 시작으로 성격이 완전히 다른 캐릭터들이 섞이는데도, 어느 하나 죽지 않고 각자의 표현이 명확했다. 오케스트라는 다양한 색깔로 말러의 음표들을 채색했다. 정교하진 않았지만, 분명 삶과 죽음이 뒤섞인 말러의 세계였다.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소용돌이에 몸을 내던진 것 같지만, 이게 말러의 어법이었다.
마지막 악장에서 지휘자는 대위법적인 요소를 부각시키기보다 더 강력하고 화려한 표현들을 선택하며 절정을 향해 갔다. 당연한 결과로 현악과 관악 등 각 섹션 간 대화나 악기들의 절묘한 대비는 흐려졌다. 그렇다면 이들은 희생을 감수한 만큼 충분한 효과를 성취했을까?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가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공연장의 모든 불이 켜지고도 박수는 그칠 줄 몰랐다. 몬트리올 심포니의 서울 투어가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허명현 음악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