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정치권 시선은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에 쏠릴 전망이다. 오는 7일 윤리위가 ‘성 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을 받고 있는 이준석 대표의 징계 심의를 다시 열기로 해서다. 징계 여부에 따라 이 대표의 정치 생명은 물론 당내 권력 구도까지 크게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향한 2030 지지율이 두터운 만큼 당 지지층 이탈과 계파 정치 부활이 촉발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李, 운명 가를 윤리위 7일 개최
윤리위는 오는 7일 회의를 열고 이 대표의 징계 여부를 심의·의결한다. 당초 윤리위는 지난 22일 이 대표 징계 여부를 두고 회의를 열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 대표 본인에 대한 소명 절차가 남았다는 이유에서다. 윤리위는 오는 7일 열릴 회의에서 이 대표를 직접 불러 의혹을 둘러싼 사실관계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이 대표를 둘러싼 의혹은 ‘성 상납 및 증거 은닉 교사’ 의혹이다. 이 대표가 2013년 중소기업 아이카이스트의 대표인 김성진 씨에게 성 접대를 받았는데, 문제가 불거지자 측근인 김철근 정무실장에게 의혹을 무마하라고 지시했다는 게 골자다. 김 실장은 성 상납 의혹 제보자인 장 모 씨를 만나 '성 상납이 없었다'는 취지의 사실확인서를 받으면서 '7억 원 투자 각서'를 써준 의혹을 받고 있다. 장씨는 김성진 대표의 수행원이다.
윤리위가 내릴 수 있는 징계는 제명, 탈당권유, 당원권 정지, 경고 4가지다. 당원권 정지 이상의 징계를 받을 경우 당 대표직은 박탈될 것으로 관측된다. 가장 낮은 수위인 경고를 받더라도 이 대표의 리더십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22일 윤리위는 김 실장에 대해선 품위유지 의무 위반을 이유로 징계 절차를 개시했다. 정치권에선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한 김 실장을 징계 대상에 올린 만큼 이 대표에 대해서도 징계 수순에 들어간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준석 신드롬’부터 선거 2연승까지
지난해 6월 이 대표의 당선은 ‘이준석 신드롬’으로 불리며 정치권을 강타했다. 당 중진인 나경원, 주호영 후보를 꺾으며 ‘사상 첫 30대·0선 당대표’란 타이틀을 얻었다. 그 이면에는 “지역·세대·계파로 나뉘어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했던 ‘꼰대’ 정치 세력을 교체해야 한다”는 국민적 갈구가 있다는 해석이 당시에 나왔다.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20~30년간 ‘친박’, 86세대 등 특정 정치 세력이 정치를 주도했지만 사회 발전은 더뎠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크다”며 “이런 구태를 깨려는 이미지에 사람들이 열광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 대표가 당 대표로서 1년 간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그중 2030세대 지지층 확대가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 지난해 6월 20만명이던 국민의힘 책임당원은 이 대표 취임 1년차인 지금 80만명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이중 2030세대는 14만명으로 전체 18%를 차지한다.
연패를 거듭하던 전국 단위 선거를 두 차례나 승리로 이끌어 정권 교체를 이뤄낸 점도 성과로 꼽힌다.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보수당인 국민의힘이 2030세대에게 이렇게 많은 표를 받아 본 적이 있느냐”며 “‘젠더 갈라치기’란 비판은 있지만 당 지지층 확대에 이 대표가 기여한 것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당내 세력 확보는 실패
다만 당내 세력을 구축하는 데는 미흡했다는 평가가 많다. 대선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11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과 갈등을 겪자 모든 당대표 일정을 취소하고 지방에서 잠행한 일도 있었다. 이를 두고 당대표로서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일었다.대선 이후에는 친윤(친윤석열)계와의 다툼이 더 노골적으로 벌어졌다. 이 대표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두고 오간 정진석 의원과 이 대표 간 ‘SNS 설전’부터 안철수 의원의 최고위원 추천을 둘러싼 내홍, 이 대표와 배현진 최고위원이 주고받은 ‘고성 갈등’이 대표적이다.
30일에는 박성민 의원이 당대표 비서실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박 의원이 친윤계 인사인 만큼 징계를 앞둔 이 대표 거취에 ‘윤심(尹心·윤 대통령 의중)’이 반영됐다는 해석과 친윤계의 ‘이준석 고립’이 노골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대표의 윤리위 회부도 이 같은 권력 다툼의 일환이라는 게 정치권 시각이다.
이 대표가 주도적으로 이끈 당 혁신위원회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혁신위를 통해 ‘공천 개혁’을 예고하면서 지역구를 둔 현역 의원과 마찰을 빚고 있다는 분석이다. 2024년 총선 공천권을 쥔 차기 당대표 선출을 앞둔 만큼 친윤 세력 등과의 당권 경쟁도 잠재해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전국 단위 선거를 2연승한 당 대표를 징계하는 데다 경찰 수사 결과도 안 나왔기 때문에 윤리위가 법리적 판단보단 정무적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징계 강행 땐 '후폭풍' 불가피
박 의원의 사퇴에 따라 오는 7일 윤리위 심의에서도 이 대표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정치권에선 윤리위가 어떤 결과를 내놓더라도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표 측이 ‘윤리위 징계가 정치적인 음해’라는 프레임을 내세울 경우 당 내홍이 길어질 수 있어서다. 실제로 이 대표 측 인사인 김용태 청년최고위원은 “많은 당원이 윤리위 배후에 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있는 걸로 안다”고 말하기도 했다.이와 함께 윤리위 징계에 불복해 법원에 집행정지 신청을 낼 가능성도 있다. 두 경우 당내 갈등만 부각돼 국정운영 동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당 안팎에서 나온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30일 라디오에서 “(집권) 초기 당내 사정이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에서 야당과 협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민 입장에서 상당히 짜증스러운 모습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가 자칫 지지층 이탈과 계파 정치 부활을 촉발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하태경 의원은 “우리 당의 지금 특징은 세대연합 정당이다. 이 대표 망신주기를 해서 지지층이 충돌하면 우리 당만 약해질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이 대표를 징계하면 2030이 대거 이탈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