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ditor's Letter
최근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에 따른 경제위기론 탓에 ESG 이슈가 퇴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경기가 얼어붙으면 기업은 생존 본능을 따라 움직입니다. 기후변화나 다양성을 논하는 것이 한가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때마침 ESG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사건이 연일 쏟아집니다. 몇몇 ESG 펀드가 실제로는 ‘무늬만 ESG’였다는 게 드러났고, 증가세를 이어가던 ESG ETF 자금은 순유출로 돌아섰습니다. 석유 의존도가 높은 미국 일부 주와 공화당은 노골적으로 ESG 때리기에 나섰고, 슈퍼스타 기업가 일론 머스크는 ESG 평가의 신뢰성을 부정합니다. ESG 확산의 기수인 블랙록도 한 발 빼는 듯합니다.
ESG 열풍은 언제든 꺼질 수 있지만, 거센 흐름을 되돌릴 순 없습니다. ESG는 팬데믹 위기 속에서 주류로 부상했습니다. ESG는 단기적 마케팅과 홍보 구호가 아닙니다. ESG 투자를 둘러싼 잡음은 본격적인 체계화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호 커버 스토리로 다룬 탄소시장과 탄소가격제(carbon pricing)는 ESG가 되돌릴 수 없는 현실임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대응이 늦으면 그만큼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이미 많은 나라가 탄소에 가격을 매기고 있습니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확실한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탄소가격제는 탄소세와 배출권 거래제가 큰 줄기입니다. 37개 국가가 탄소세를, 34개 국가 및 지역이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매년 그 수가 빠르게 증가합니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23%가 탄소세나 배출권 거래제의 적용을 받고 있습니다. 탄소배출은 더 이상 공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탄소가격제의 또 다른 형태입니다. 국가가 관리하는 탄소세나 배출권 거래제와 달리 민간 참여자들이 움직이는 시장입니다. 감축 프로젝트를 통해 생성된 탄소상쇄 크레디트를 사고팝니다.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자발적 탄소시장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탄소중립 선언은 정부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정부 규제보다 더 많은 양을 감축해 2050년까지 순배출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공개적 약속입니다. 생산 활동에서 배출되는 탄소감축이 쉽지 않아 많은 기업이 상쇄 크레디트 구매에 나서고 있습니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요즘 가장 뜨거운 시장 중 하나로 꼽힙니다. 성장 산업으로 점찍은 기업들이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탄소 크레디트를 토큰화한 곳도 있습니다. 자발적 탄소시장의 성장은 고품질의 신뢰성 높은 감축 프로젝트 개발이 핵심입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값싸고 품질 좋은 세계 각지의 프로젝트를 선점하기 위해 한 발 앞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탄소가 돈인 시대입니다. 금이나 달러가 중요해지면서 금 본위제, 달러 본위제라는 말이 나온 것처럼 ‘탄소 본위제’라는 용어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습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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