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번 달까지 안될까요. 제가 좀 급해서요."(서울 상계동에 거주하는 A씨) "아니 시세보다 5000만~1억원을 낮춰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어요. 저도 답답하네요."(서울 상계동 공인중개사무소 대표)
요즘 서울 각 지역 공인중개사무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자녀 교육이나 직장 이동 등의 문제로 이사를 앞두고 있는데, 살고 있는 집이 팔리지 않는 것이죠. 집이 팔려야 이사 갈 집의 자금 문제도 해결할 텐데 살고 있는 집이 꽁꽁 묶여 있으니 대책이 없는 겁니다.
부동산 시장에선 '아무리 경기가 불확실해도 서울 아파트는 굳건하다'라는 암묵적인 인식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 이런 인식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른바 거래 가뭄이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죠.
미분양이 쌓인 지방이 아닌 서울 아파트 값마저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엔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일단 가파른 금리 인상입니다. 미국이 돈줄을 죄면서 한국은행 역시 금리 인상 보폭을 맞추고 있죠.
지난해 하반기 이후 한국은행이 본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시중은행들이 공급하는 주택대출 금리도 빠르게 치솟고 있습니다. 집을 사려는 수요자들에겐 단기간에 자금 부담이 확 커진 것이죠.
여기에 경기 불안에 우려가 조금씩 제기되면서 집 값 고점 인식까지 확산하고 있습니다. 수요자 입장에선 집 값이 떨어질 것 같으니 당장 아파트 매입을 꺼리고 관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겁니다.
과거엔 '서울 아파트는 일단 사두면 오른다'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이런 생각에 변화가 생긴 겁니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올 6월 넷 째 주 서울 아파트 값은 지난주 대비 0.03% 떨어졌습니다. 벌써 4주째 계속 하락세입니다. 낙폭도 조금씩 커지고 있고요.
특히 노원구, 서대문구, 동대문구, 도봉구, 은평구 지역 아파트 값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서울 지역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들은 "새 정부 들어 다주택자들이 양도소득세 중과를 면제받기 위해 서울 외곽부터 갖고 있는 매물을 서둘러 내놓는 바람에 급매물이 더 빠르게 쌓이고 있다"며 "매수세는 사실상 거의 사라져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값에 내놔야 흥정을 시도할 수 있을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수치로도 나타납니다. 이달 들어 서울 지역 아파트 거래량은 400건에도 못 미쳤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교하자면 10분의 1 수준이죠. 거래 자체가 얼어붙었단 얘기입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올 6월 현재 서울 전역에 나온 아파트 매물은 6만5000건이 넘습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시행 직전인 한달 전에 비해 20% 가까이 늘었죠. 서울 지역에 쌓인 아파트 매물 규모는 2020년 7월 이후 가장 많은 규모이기도 하고요. 부동산 전문가들은 "일단 대출 이자 부담이 과거에 비해 빠르게 늘었고, 주택 가격 상승 폭이 지지부진하면서 주택 구입 관련 수요자들의 적극성이 확연히 줄었다"고 진단합니다. 당분간 의미 있는 수준의 회복세는 기대하기 쉽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한국은행이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에 보폭을 맞추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더 낼 수 있어 이런 상황이 크게 달라지긴 어려울 것이란 논리죠. 일각에선 내년 상반기까지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정부가 최근 생애 최초로 주택을 구입하는 수요자에 대해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거래 활성화 방안을 내놨지만 즉각적인 효과를 낼 만큼의 수준은 아니라는 판단에섭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사실 정부가 거래 활성화 대책을 아무리 내놔도 서울의 절대적인 집 값 수준이 높은 데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여전해 고소득자가 아니면 대출도 어렵고 내 집 마련도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전했답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