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과 고용부, 누구 말이 맞나
논란의 발단은 윤 대통령의 24일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 발언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출근길에 ‘어제 발표된 새 정부 노동정책에서 주 52시간제 개편을 두고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는 질문에 “아직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어제 보고를 받지 못한 게 아침 언론에 나와 확인해 보니, 고용부에서 발표한 게 아니고 부총리가 고용부에다 아마 민간연구회라든가, 이런 분들의 조언을 받아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대해 좀 검토해보라’고 이야기해본 사안”이라고 설명했다.주 52시간제 개편안은 전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하고 이정식 고용부 장관도 참석한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노동개혁 방안으로 논의됐고 이후 곧바로 이 장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직접 발표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이 “보고를 받지 못했다”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한 것이다. 게다가 이 장관의 브리핑 일정은 지난 17일 언론에 공지됐다.
윤 대통령 발언 직후 고용부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용부 관계자는 “수석실을 통해 보고했다”며 “보고를 안 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다만 “어제 장관 발표는 정부의 최종 공식 입장이 아닌, 기본적인 방향과 향후 추진계획”이라며 “최종안은 민간연구 결과, 현장 노사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확정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발언을 고용부가 정면 반박하는 것으로 비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노동시간 유연화도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할 수 없게끔 설계가 돼 있어서 보고를 받은 건 있다”고 했다. 고용부에서 이 장관과 권기섭 차관이 지난 21일 권 대표에게 주 52시간제 개편안을 보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 대변인실은 오후에 브리핑을 열어 “관련 보고를 못 받았다는 뜻은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에게 (노동담당) 수석이 보고를 했지만 최종안이라고 보고는 안 했다”며 “그래서 대통령이 보고를 못 받았다”고 얘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고용부 장관 브리핑 후 언론에서 구체적인 근로시간 제도 개선 내용이 보도되면서 (대통령이) 기존 추진계획이 아닌 노동개혁 최종 정부안이 확정 발표된 것으로 오해했다”고 해명했다.
노동계 눈치?
대통령실과 고용부 설명을 종합하면, 고용부는 대통령실 담당수석에게 보고했고 수석도 대통령에게 주 52시간제 개편안을 보고하긴 했지만, 최종 확정안이라고 보고하진 않았고 대통령도 그런 취지로 언론에 말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명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일각에선 대통령실이 노동계 반발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노동계 하투를 앞둔 상황에서 주 52시간제 개편안에 대해 노동계가 반발하고 ‘장시간 근로를 허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대통령실이 부담을 느껴 “확정안이 아니다”고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의지도 도마에 오를 수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다음달 2일 ‘노동개악·공공성 후퇴 저지’ 등을 내걸고 전국노동자대회를 열 계획이다. 대통령 대변인실은 이에 대해 “하투를 앞두고 노동계 눈치를 본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한편에선 ‘이번 사안과 관련해 수석들이 대통령에게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날 발표된 주 52시간제 개편안에 대해 “윤석열 정부 노동 개혁의 기본 방향이며 국정과제에 포함된 내용으로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전날 고용부 발표는 처음 공개된 내용이었다.
곽용희/좌동욱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