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치안감 인사 발표를 엉터리로 해 혼선을 일으킨 과정을 보면 정상적인 정부 조직이 맞나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대통령 재가도 나지 않고, 행정안전부에서 검토해서 대통령에게 의견도 내지 않은 상태에서 밖으로 유출되고, 이것이 또 언론에 마치 인사가 번복된 것처럼 나갔다”며 “아주 중대한 국기문란, 아니면 공무원으로서 할 수 없는 과오”라고 강도 높게 질책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건 개요만 보더라도 상식 밖의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15일 해외 순방 전 경찰청장이 처음 올린 인사 초안에 수정을 가해 최종안을 짜놓았다. 그리고 이 장관이 21일 귀국하자 오후 6시께 행안부에서 파견근무를 하는 치안정책관이 경찰청에 치안감 보직 내정안을 넘겼고, 경찰청은 1시간쯤 뒤인 7시께 경찰 내부망에 올리고 언론에도 알렸다. 하지만 오후 8시30분께 치안정책관이 경찰청에 “인사 내용이 잘못됐다”고 한 뒤 오후 9시30분께 7명의 보직이 바뀐 인사가 다시 발표됐다. 대통령 결재가 최종적으로 난 것은 오후 10시쯤이라고 한다.
애초 행안부 치안정책관이 최종안이 아니라 초안을 경찰청에 잘못 보낸 데서 사달이 났다. 초안과 최종안을 혼동한 실수라는 것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치안감은 시·도 경찰청장급의 상당한 고위직이고 인사의 민감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장관이 초안을 수정했다는 사실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잘못된 초안이 발표되고 수정안이 다시 게재·발표되는 데 2시간30분가량 걸린 것 또한 의문이다.
무엇보다 두 번의 인사 발표가 모두 대통령 재가 전에 이뤄졌다는 점은 도저히 용인할 수 없다. 작은 민간기업도 인사권자인 사장의 결재를 확인하고서야 인사를 발표하는데, 12만 명 거대 조직이 인사권자인 대통령 재가도 나지 않은 인사안을 발표한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경찰은 관행이었다고 하는데, 무슨 이런 관행이 다 있는가.
이번 사태에 대해 진상 규명과 응당한 책임 추궁은 두말할 나위 없다. 경위야 어떻든 경찰청장도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는 9월부터 부패·경제범죄를 제외한 대부분 사건의 수사 개시권과 종결권을 넘겨받고 2024년부터는 대공 수사권마저 갖게 될 거대 경찰이 그만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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