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 용어조차 제각각인 상황에선 회계 투명성을 개선하기 어렵습니다.”(박종성 숙명여대 교수)
“파편화돼 있는 법체계를 일원화할 수 있는 통합기구가 필요합니다.”(이우종 서울대 교수)
국내 회계 전문가들은 23일 제주 라마다프라자호텔에서 열린 ‘2022년 한국회계학회(KAA) 국제학술대회’에서 회계 투명성 개선을 위한 ‘회계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영리법인, 공익법인, 공공기관 등 법인 유형별로 다른 법률이 적용되고 주무관청도 다르다 보니 회계 이용자들의 혼란이 커지고 같은 기능도 각기 다른 부서에서 수행돼 운영상의 비효율이 크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회계기본법을 제정하면 국가 전체적으로 체계적이고 일관된 회계정책을 수립할 수 있어 회계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한국경제신문사가 후원한 이번 학술대회는 ‘공정과 신뢰 회복을 위한 회계 개혁’을 주제로 24일까지 이틀 동안 열린다.
○“일관된 회계시스템 부재”
이날 ‘회계제도, 미래로의 혁신’이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 박종성 숙명여대 교수는 “통일된 회계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박 교수는 “조직 유형별로 근거 법률과 주무관청이 다르다 보니 주기적 지정제, 감사보고서 감리제도 등 비슷한 기능을 각기 다른 부서에서 수행하는 운영상 비효율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 전체적으로 체계적이고 일관된 회계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총괄 기능이 부재한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회계업계에 따르면 국내 공익법인의 경우 주무관청이 기획재정부로, 회계 근거 법령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다. 그런데 영리법인은 금융위원회 관할로 상법과 자본시장법, 외부감사법에 근거한 회계제도를 운영한다. 사립학교(교육부 관할, 사립학교법)와 의료기관(보건복지부 관할, 의료법), 공기업(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법)도 각기 다른 기준을 따르고 있다. 박 교수는 “기준이 다르다 보니 외부감사제도와 감사인지정제도, 감리제도, 내부회계관리제도 등의 도입 여부도 제각각”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 모든 걸 아우르는 통일된 회계기본법은 우리 사회의 회계 투명성을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우종 서울대 교수도 회계기본법의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 그는 ‘지속 가능 사회를 위한 회계개혁’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회계는 정보의 측면에서 이해관계자 간 소외를 극복하고 공정을 달성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라며 “경제 주체들의 다양한 정보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일관된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또 “파편화된 법체계를 통합하기 위해선 모든 경제주체의 보고 원칙을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회계기본법 같은 법 제정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한 범(汎)정부 부서 통합기구의 신설을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완희 가천대 교수도 “각 회계 담당 기관의 기능을 통합한 강력한 조직을 구축해 회계 책임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산시스템 고도화도 필요
최근 잇따르고 있는 회계 담당자의 일탈을 통제하는 데 전산시스템의 고도화가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윤재원 홍익대 교수는 ‘디지털 회계 혁신’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오스템임플란트, 계양전기 등 기업의 횡령 사건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여전히 한국 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부정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빅데이터와 연계하고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회계시스템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했다.부정을 줄이려면 금융당국이 더 빈번하게 재무제표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 교수는 “미국에선 증권거래위원회(SEC)가 3년에 1회 이상 정기 보고서에 대한 심사를 하도록 법제화했지만 한국 상장회사의 재무제표 심사 주기는 13년으로 매우 길다”며 “신속한 오류 정정을 위해 심사 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는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이날 강연과 시상식에 이어 24일 분과별 논문 발표를 진행한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