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한 약사가 화상투약기 특허를 출원한 뒤 시범사업을 승인받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박인술 쓰리알코리아 대표 겸 약사는 편의점 상비약 판매 논의가 시작된 2011년 화상투약기를 개발했다. 약을 잘 모르는 편의점 직원보다는 약사가 원격으로 파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이 기기가 상용화되면 약국이 문을 닫더라도 사람들이 편하게 약을 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2013년 인천 부평의 한 약국 앞에 시제품을 설치했다. 하지만 동료 약사들의 반대는 격렬했다. 결국 사비로 만든 기기는 창고에 처박혔고, 9년이 흘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제개혁이 화두였지만 변한 건 없었다. 약사단체의 주장도 한결같았다. “환자들의 의약품 오남용을 부추기고 의료가 영리화될 것”이라는 반대 논리를 내세웠다.
지난 20일 화상투약기 시범사업이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 과제로 승인받았다. 2년 안에 규제 개선 법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다시 2년이 더 주어진 뒤 끝나는 시한부다. 약사단체는 어김없이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대한약사회는 21일 성명을 내고 “비대면 진료를 위한 정부와의 협의를 중단하고 단 한 곳의 약국에도 해당 기기가 설치되지 않게 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들의 반대 이유엔 하나가 더 추가됐다. ‘기술과 서비스의 혁신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기술 개발 뒤 11년 동안 번번이 발목을 잡은 것은 약사들이다. 사업 초기엔 수출을 추진할 만큼 우수성을 인정받았으나 규제에 발목이 잡혔다. 그사이 중국에선 비슷한 제품이 보급됐다. 혁신과 발전을 틀어막은 약사들의 주장은 궤변에 가깝다.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을 화상투약기로 구매하면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이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화상투약기는 약국에선 실온 보관하는 상당수 의약품을 냉장 보관한다. 약사와 환자 간 상담 내용도 모두 기록된다. 약사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화상투약기는 늦은 밤 갑자기 약이 필요한 환자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일찍 문을 닫아야 하는 약국 사이에서 상생 방안을 고심하던 한 약사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환자와 약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연구한 결과물이다. 이런데도 약사 단체가 화상투약기의 사회적 편익 여부를 가늠할 실증사업 기회마저 막겠다는 건 집단 이기주의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11년 넘게 환자와 약사 모두의 이익을 지키겠다는 박 대표에게 약사 사회가 오히려 손을 내밀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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