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된 소비 패턴은 유통업계 실적을 갈라놨다. 지난 1분기 미국 백화점과 초저가 할인 판매점은 호실적을 냈다. 반면 월마트와 타깃 등 대형마트 실적은 고꾸라졌다. 향후 전망은 격차가 더 크다. 미 중앙은행(Fed)의 긴축정책에도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었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여서다.
○럭셔리 소비채널 ‘웃음’
백화점(메이시스) +178%, 대형마트(월마트) -25%, 저가 소매점(달러트리) +43%. 지난 1분기 미국 유통기업들의 순이익 성적표다.미국 백화점 메이시스의 올 1분기 매출은 53억4800만달러(약 6조7000억원)로 전년 동기(47억600만달러)보다 14% 늘었다. 순이익은 2억8600만달러로 178% 급증했다. 시장 추정치(2억5230만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또 다른 백화점 노드스트롬의 1분기 매출도 35억7000만달러(약 4조4800억원)로 시장 추정치(32억8000만달러)를 넘었다.
‘럭셔리’ 소비는 물가 상승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 백화점 실적 호조로 드러난 셈이다. 제프 제네트 메이시스 최고경영자(CEO)는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인플레이션 등) 거시환경의 압박 속에서도 소비자들은 쇼핑을 멈추지 않았다”며 “명품 및 럭셔리, 의류 부문 실적이 좋았다”고 말했다.
실적 전망도 상향 조정했다. 메이시스는 연간 주당순이익(EPS) 전망치를 기존 4.13~4.52달러에서 4.53~4.95달러로 올려 잡았다. 노드스트롬도 연간 신용카드 매출 전망치를 기존 5~7%에서 6~8%로 높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럭셔리 패션기업 랄프로렌과 고급 가정용품 판매업체 윌리엄스 소노마도 1분기 호실적을 냈다”며 “물가가 상승해도 가격 민감도가 낮은 고소득 소비자들의 수요는 견고하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월마트 고객들, 달러트리로 간다
인플레이션의 영향력이 극명하게 드러난 분야는 생필품 소비다. 미국 대표 대형마트인 월마트와 타깃은 올 1분기 어닝쇼크(실적 충격)를 냈다. 월마트의 1분기(2~4월) 순이익은 20억50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5% 줄었다. 주당 순이익도 1.30달러로 시장 추정치(1.48달러)를 밑돌았다. 타깃은 1분기 순이익이 10억900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20억9700만달러) 대비 반 토막 났다.대형마트의 주 고객인 중산층이 소비를 줄인 영향이다. CNBC는 중산층들이 전자제품과 의류 등 상품을 포기하고 계란과 빵 등 식료품 소비를 늘렸다고 해석했다. 생필품 가격이 급등하자 부담이 커진 소비자들이 당장 필요하지 않은 상품 소비는 미룬 것이다.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 대형마트 특성상 원가 상승분을 판매가에 다 반영하지 못한 점도 한몫했다.
월마트는 올해 순이익이 전년보다 1%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비용 압박이 커질 것이란 예측이다. 타깃은 올해 매출이 한 자릿수 성장세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은 대형마트 대신 초저가 할인 판매점으로 갔다. ‘미국판 다이소’로 불리는 1달러숍 달러트리는 1분기 순이익(5억3600만달러)이 43% 늘었다. 다른 저가 할인점 달러제너럴은 매출이 0.1% 감소했으나 시장 추정치보다 양호한 성적을 냈다.
이들이 꼽은 호실적의 이유는 인플레이션이다. 달러제너럴은 “기존 고객층보다 소득이 높은 소비자들까지 달러제너럴에서 쇼핑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중산층들이 아마존과 타깃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품질이 좋은 제품을 구매하는 걸 포기하고 ‘싼 게 비지떡’인 제품을 골랐다는 의미다. 리처드 드렐링 달러트리 회장은 “소비자들은 1980년 이후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과 기록적인 에너지 가격, 코로나19 여파와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이런 시기에는 할인점이 대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할인점 중에서도 코스트코처럼 부유층이 주 고객인 채널은 실적이 좋았다”며 “중산층을 타깃으로 하던 소매업체들은 저가형 경쟁사들에 고객을 빼앗기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달러제너럴은 올해 매출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3.0~3.5%로 올렸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