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인 이상 대기업 근로자의 올 1분기 월평균 임금 총액이 전년 동기 대비 13.2% 증가했다는 한경 보도(6월 7일자 A1, 3면)다. 정보기술(IT) 업체의 인력 쟁탈전에서 촉발된 임금 인상이 자동차·조선·제철 등 다른 산업으로 빠르게 퍼진 탓이다. 이런 가운데 본격적인 임금 및 단체협약 시즌을 앞두고 전 산업 분야에서 두 자릿수 임금 인상 요구가 빗발치면서 임금발(發)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임금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문제는 생산성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생산성 지표를 보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19년 기준으로 40.5달러에 머물러 OECD 36개 회원국 중 30위를 차지했다. 한국보다 생산성이 낮은 나라는 칠레, 그리스, 헝가리, 라트비아, 멕시코, 포르투갈뿐이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2015~2020년 9.8% 증가한 데 비해 시간당 평균 임금은 25.6%나 올랐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은 이미 세계적인 고임금 국가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임금은 미국, 캐나다, 독일, 영국, 프랑스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2015년부터 일본을 추월하고, 2017년에는 이탈리아도 제쳤다. 생산성 향상을 동반하지 않은 임금 상승은 생산비용을 높이고 물가 상승을 가속화해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이는 고용 축소와 소비 감소를 몰고와 경제에 재앙이 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한국 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위협이다. 최근 물가 상승은 수요 확대가 아니라 원자재 가격 상승 등 공급 측면 요인에 기인한 것이다. 여기에 급격한 임금 인상까지 겹치면 고물가→임금 상승→고물가→경제 추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물가가 오르면 실질 임금이 감소해 임금 근로자의 생활도 피폐해진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경쟁적인 임금 인상 요구는 모두가 패자로 전락하는 지름길이다. 이 같은 파국적 결과를 피하기 위한 노·사·정 공동의 노력이 절실하다.
노사는 고용 등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에서 인상률을 제한하는 동시에 임금과 생산성을 연계하는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최저임금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강행 규정으로 기업과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 만큼 우리 경제가 감내 가능한 수준으로 속도 조절이 필수다. 1998년 외환위기 직후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대타협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한 것처럼 당면한 복합위기는 고통 분담을 통한 노·사·정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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