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2012년 6월 7일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1위(점포 기준) 편의점 브랜드는 일본의 ‘훼미리마트’였다. 보광그룹 CVS(편의점) 사업부에서 출발한 보광훼미리마트(현 BGF리테일)가 1990년 ‘편의점 선진국’ 일본의 노하우를 빌려와 첫 점포(서울 가락동 1호점)를 내고 22년 간 점포 수를 7000여개까지 늘렸다.
그랬던 훼미리마트는 이제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 편의점 주 고객층인 10대들 가운데엔 우리나라에 훼미리마트란 게 있었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많다.
“미래 위한 결단”
7일은 BGF리테일이 독자적인 편의점 브랜드 CU를 선보이고, 사명을 보광훼미리마트에서 BGF리테일로 바꾼 지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BGF리테일은 2012년까지 일본 브랜드를 빌려 쓰던 프랜차이지(Franchisee)였다. 지금은 몽골과 말레이시아 등에 CU를 수출하는 프랜차이저(Franchisor)로 성장했다. BGF리테일의 ‘브랜드 독립’은 일대 모험이었다. 편의점 업계와 점주들 사이에선 “22년간 쌓아온 브랜드 가치를 제 손으로 부수는 행동”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그런데도 BGF리테일은 결단을 내렸다. 결과는 대성공. 현재 전국의 CU 점포는 1만6000여개에 달한다. “사과나무를 키워 열매도 따 먹지만 정작 나무는 우리 것이 아니다”라며 훼미리마트와의 결별을 감행한 홍석조 회장(사진)의 선견지명이 빛을 본 것이다.
홍 회장은 광주고검장을 끝으로 검찰 생활을 마치고 2007년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이후 5년간 회사를 경영하면서 자체 경쟁력을 키울 수 없고, 해외 진출도 불가능한 라이선스 모델의 성과는 ‘반쪽짜리 성공’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그는 훼미리마트와 22년간의 동행에 마침표를 찍고 CU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였다.
당시에는 이 같은 결단을 무모한 도전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경쟁사들의 험담이야 애써 무시한다 치더라도, 점주들 반발을 설득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일본 훼미리마트에 대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홍 회장은 정면승부를 택했다. 직접 국제법을 연구하며 훼미리마트 본사에 맞섰다. 편의점 간판을 바꾸고, 리모델링하는 비용을 전액 지원했다.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나자”고 점주들을 설득했다.
홍 회장은 지난 3일 창립 10주년 기념사를 통해 “독자 브랜드를 가진다는 선택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번데기 속에서 몸을 재구성하듯 미래의 온전한 성장을 위해 과감하게 변화를 선택했다.”
실적과 주가로 증명
BGF리테일이 국내에서 운영하는 편의점 수는 10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2012년 2조9000억원 수준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6조7812억원으로 불어났다.무엇보다 일본에서 배운 노하우를 갈고 닦아 한 발 더 성장한 ‘K-편의점 모델’을 수출하는 성과를 올릴 수 있게 된 것은 ‘탈(脫)일본’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CU는 2018년 몽골 진출 이후 4년 만에 200호점을 돌파했다.
올해 초엔 미국계 편의점인 서클K 현지 점포까지 인수해 몽골 편의점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며 1위를 달리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한류 열풍을 타고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달 내 100호점 돌파가 예상된다.
BGF리테일은 지난 1분기 국내 편의점 업계에서 독보적인 실적을 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7% 늘어난 1조6922억원을 올렸다. 영업이익은 378억원으로 75.0% 급증했다. 코로나19가 수그러들면서 바깥 활동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2분기 이후 실적은 더 개선될 전망이다. 주가도 고공행진 중이다. BGF리테일 주가는 올해 들어 27.2% 올랐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