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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노령 사회'는 왜 '고령 사회'에 밀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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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사랑’만큼 익숙하면서도 난해한 게 또 있을까? 어렸을 때는 남녀 간의 사랑이나 부모님의 사랑이 다인 줄 안다. 조금 넓혀 봐야 나라 사랑이니 우리말 사랑이니 하는 정도다. 요즘은 남자끼리 또는 여자끼리도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우리말도 바뀌는 것은 당연지사다. 사전에 반영된 ‘사랑’ 풀이가 달라지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회적 인식 변화에 따라 말도 달라져
‘애인’과 ‘연인’은 같은 말이다. ‘연애의 상대자’를 가리킨다. 1957년 한글학회가 완간한, 최초의 국어대사전 《조선말 대사전》에서의 풀이다. 그럼 ‘연애’는? 이는 ‘남녀 사이의 애틋한 사랑’을 뜻한다. 여기서 ‘사랑’은 뭘까? ‘이성의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다. 물론 좁은 의미에서의 ‘사랑’ 풀이다. 이런 말들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요소는 ‘남녀 간’이다. 《조선말 대사전》 이후 국어사전에서는 모두 그렇게 풀어왔다.

그런데 2012년 큰 변화가 생겼다. 이전 풀이에 있던 ‘남녀 사이’ 또는 ‘이성 간’이란 표현이 모조리 사라진 것이다. ‘어떤 상대’ 또는 ‘두 사람’이란 말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웹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에서의 일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기존 풀이가 ‘성(性)소수자 차별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일자 이를 중립적 표현으로 바꾼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보수단체들이 반발했다. 국어원이 동성애를 옹호하는 표현을 썼다는 게 비판의 요지였다. 일부 종교단체 등을 중심으로 재개정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국어원은 2013년 10월 재검토에 들어가 이듬해 1월 ‘남녀’ 표현을 되살린 뜻풀이로 다시 고쳐 웹 사전에 올렸다. 이 사태는 급기야 그해 국정감사 도마에 올랐다. 당시 정모 국회의원은 국감 보도자료를 통해 “(국어원이) 외부 압력과 민원에 굴복해 ‘사랑’ 등에 관한 뜻풀이를 이성애 중심으로 재수정했다”며 “우리의 말과 언어는 인류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신장하는 수단이 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사회 인식 변화에 따라 기왕에 알던 단어 풀이가 달라지는 사례 중 하나다.
‘노인’이란 말 기피…‘어르신’으로 점차 대체
사회적 인식 변화는 주력으로 쓰는 단어 자체를 바꾸게 하는 결과도 가져온다. ‘경로당’이란 명칭이 ‘시니어센터’나 ‘시니어클럽’으로 변해 가는 게 그런 사례다. 예전에 ‘노인정’이란 게 있었다. 그런데 어감이 좋지 않다고 해서 이름을 바꾼 게 ‘경로당’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제 그런 말조차 싫다고 해서 아예 외래어로 이름을 바꾸고 있는 셈이다.

외래어 남용으로 보기엔 좀 더 근원적인 까닭이 있을 것 같다. 평균 수명이 80을 넘으면서 ‘노인’이란 말을 잘 쓰지 않으려는 사회심리적 흐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늙을 로(老)’ 자를 피하려는 분위기도 읽힌다. 문맥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노인’이 종종 ‘어르신’으로 대체되는 것은 그런 연장선상으로 이해된다. ‘노령 사회’보다 ‘고령 사회’란 표현이 선호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동사무소로 부르던 곳이 2000년대 들어서는 주민센터라고 하더니 요즘은 행정복지센터란 이름을 달고 있다. 장애자라고 부르던 말은 ‘장애인’으로 이미 바뀌었고, 노숙자는 ‘노숙인’으로, 당선자 역시 ‘당선인’으로 바뀌어 가는 추세다. ‘-자(者)’보다 ‘-인(人)’이 더 우아하고 품격 있고 상대를 대접해주는 표현이라는 것은 언어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이 그리 생각한다. 모두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 따라 주력으로 쓰이는 말의 형태가 교체된 결과다.

이를 단순히 차별어 금지니 외래어 남발이니, 우리말 순화니 하는 시각에서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발전론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말의 변천은 그 자체로 언어적 실험이고 진화의 한 양태다. 다양한 말의 생성과 소멸, 뒤섞임 속에서 자유로운 경쟁이 벌어질 때 우리말도 더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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