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등 해외 지원과 외국 간호사들이 시작한 한센인 구호 활동은 한국인의 삶도 바꿔놨다. ‘내 형제를 우리 손으로 돕자’며 1970년 부산에서 태동한 릴리회도 이 중 하나다. 가톨릭시보(가톨릭신문)에 실린 한센인 구호 광고를 본 김광자 한국은행 부산지점 행원은 부산시 외곽에 있는 한센병환자마을에 양말과 과자를 들고 찾아갔다. 예상보다 많은 900여 명의 환자가 있었고 김씨는 선물이 부족해 보따리를 풀지도 못한 채 돌아왔다. 행원 20여 명과 함께 한센병 환자를 돕는 릴리회를 조직한 게 이 무렵이다.
한국은행 전국 지부와 독지가들까지 가세하면서 릴리회 조직은 전국 규모로 커졌다. 김씨가 당시 돈 6000원을 첫 회비로 모아 가톨릭나사업가연합회에 보내자 한 신부가 “이 돈을 가장 요긴하게 쓸 사람은 엠마”라고 소개한 것이 릴리회와 엠마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모금한 돈은 모두 엠마에게 전달됐고, 그는 한국인의 헌신에 감동해 1977년부터 2008년까지 릴리회 회장을 맡았다. 릴리회(회장 이옥분 경북대 명예교수)는 1970년부터 지금까지 약 80억원을 모금해 한센인 치료와 재활, 자녀 장학사업 등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본회 사무실을 대구에 둔 릴리회는 많은 산하단체를 탄생시켰고 조직은 해외까지 확대됐다.
릴리회 이사인 박석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릴리회는 우리나라 공동모금회의 효시”라며 “오스트리아부인회처럼 밥 한 끼, 차 한 잔 값을 아껴 작지만 꾸준히 이웃을 돕자는 봉사정신이 우리 사회에 확산하는 데 일조했다”고 설명했다.
대구=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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