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급물살을 타고 있는 납품단가 연동제의 입법화 논의에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의무적으로 반영토록 하는 납품단가 연동제는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반(反)시장적 발상이다.
납품단가 연동제를 요구하는 중소기업인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공급망 문제로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것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들에게 큰 고통이 되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의 상당수가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는 산업 생태계로 볼 때 협상력이 약한 중소기업의 납품가 인상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렇다고 원자재값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자동 반영토록 강제하는 것은 우리 민법의 근간인 사적 자치와 계약 자유의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복원’을 기치로 내건 윤석열 정부에서 가장 반자유주의적인 제도가 이렇게 별 저항 없이 추진되고 있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가격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경제 환경에선 혁신 기업이 성장할 수 없다. 가뜩이나 중소·중견기업의 대기업으로 성장이 더딘 나라가 한국이다. 정부가 적정 이윤을 보장해주겠다는데 누가 원가절감과 혁신을 고민하겠는가.
자본은 가장 효율적인 곳으로 흐르는 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부의 압박이 세질수록 원청기업은 국내보다 비용이 싼 해외 아웃소싱에 눈을 돌리게 돼 있다. 국내 협력업체들에 더 큰 손실로 돌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8년부터 거론된 납품단가 연동제가 14년째 공전하는 것도 이처럼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또 같은 이유로 세계 어느 나라도 이를 도입한 곳이 없다. 그렇다고 중소기업의 고통을 외면하자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가격 개입이나 강제화가 아니라, 표준 하도급계약서를 만든 기업에 혜택을 주는 것처럼 인센티브 시스템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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