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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美경제 지탱한 소비도 무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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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기회가 될 때마다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은 낮다”고 말해왔다. 인플레이션이 심해 기준금리를 더 빨리 올릴 상황이 와도 미국 경제는 잘 버틸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 자신감의 근거는 미국 소비다. 코로나19 이후 Fed의 통화완화 정책 덕에 미국에서는 ‘저축이 넘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계 재정 상황이 좋다. 고용 시장에서도 사람을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는 고용주는 많아도 일자리가 없어 가슴 졸이는 구직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간 파월 의장의 낙관론은 대체로 적중했다. 물가상승률이 40년 만에 최고치를 뚫어도 미국의 소비는 흔들리지 않았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월 대비 0.3% 오른 지난달에도 미국의 소매판매는 0.9% 늘었다. 소비 증가세가 물가 오름세의 세 배에 달한 것이다.
불안한 월마트·타깃 실적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지난주부터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미국의 양대 유통기업인 월마트와 타깃이 올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다. 두 기업은 실적을 통해 세 가지 사실을 알려줬다. 첫째는 유통 기업들의 매출은 늘었지만 이익은 줄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가격이 상승해 전체 매상이 증가했지만, 각종 비용이 더 많이 올라 수익성이 악화했다.

둘째는 미국 소비자들이 조금씩 지갑을 닫고 있다는 점이다. 먹거리를 비롯해 당장 줄이기 힘든 필수 소비재는 사지만 없어도 되는 전자제품 등 사치재 구매는 줄이고 있다.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큰 내구재가 인플레이션에 먼저 반응한다는 경제학 이론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마지막으로 유통업체들의 자체 브랜드(PB) 상품 매출이 늘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경쟁 관계인 제조업체들의 브랜드 제품보다 값이 싸서다. 전체적으로 소비자들이 전대미문의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곳곳에서 씀씀이를 줄이고 있다는 게 입증됐다.

아직까지 파월 의장이 참고하는 경제지표에선 이런 ‘수요 파괴’ 현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표상으로는 수요가 받쳐주니 미국 기업들은 여전히 생산을 늘리고 있다. 미국의 4월 산업생산은 전달 대비 1.1% 증가했다. 월가 예상치(0.5%)를 두 배 이상 뛰어넘은 수치다. 파월 의장이 “미국의 소비와 생산은 견조하고 노동시장은 탄탄한 편”이라고 평가한 근거다.
'수요 파괴'로 이어지나
하지만 거시지표보다 선행하는 유통 기업들의 실적에선 미국의 소비 위축이 확인됐다. 파월 의장의 말만 믿고 있던 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타깃이 실적을 내놓은 지난 18일 미국 유통주 주가는 일제히 급락했다. 그날 다우지수와 S&P500지수 하락폭은 2020년 6월 이후 가장 컸다.

인플레이션 강도가 강해지자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말을 바꿨다. 같은 날 옐런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식량·에너지·원자재 가격이 상승해 인플레이션과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옐런 장관은 이달 초까지만 해도 “Fed의 빠른 긴축에도 미국 경제는 연착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확신이 무너지는 데 한 달도 안 걸린 것이다.

시장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파월 의장까지 입장을 바꿀지 불안해하고 있다. 지난해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했다가 번복한 일이 재연될 수 있어서다. 오는 24~26일 베스트바이와 코스트코, 메이시스 등 미국 유통사들이 내놓는 실적을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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