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아파트 매매시장에서 거래 절벽과 매물 적체가 지속되고 있다. 내달 예정된 주거정책심의위원회(주정심)를 앞두고 주택 시장 침체가 지속되면서 대구를 비롯해 전국 규제 지역에서는 규제를 풀어달라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특히나 대구는 미분양 아파트까지 쌓이면서 지역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24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대구 수성구 범어동 '범어역우방유쉘' 전용 115㎡(42평)는 이달 8억4800만원에 거래됐다. '대구의 강남'이라 불리는 수성구에서도 학원 시설이 밀집해 주거 선호도가 높은 지역의 아파트다. 같은 평형 최고가인 10억7200만원과 비교해 2억2400만원 하락하며 약 2년 전 가격으로 돌아갔다.
수성동 '신세계타운' 전용 84㎡는 지난해 5월 기록한 최고가보다 1억5250만원 낮은 5억8000만원에 팔렸다. 신매동 '아이프라임신매' 전용 84㎡ 역시 4억3000만원에 손바뀜되며 6개월 만에 1억3000만원 떨어졌다. 해당 매물은 1층이었는데, 통상 1층 매물이 로열층에 비해 15% 저렴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직전 거래에 비해 6000만원 이상 저렴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범어동의 A 공인중개사는 "집주인들이 호가를 낮춰도 매수 문의가 없다. 가격을 크게 낮춘 급급매가 아니면 거래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변의 B 공인중개사도 "신규 분양도 수요가 줄어든 상황이라 기존 물량은 쌓이기만 한다"며 "등록된 호가보다 4000만~5000만원가량 낮출 수 있는 매물도 여럿 있다"고 설명했다.
대구 집값 하락세는 통계에서도 볼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은 대구 집값이 올해에만 누적 2.31% 하락한 것으로 집계했다. 달서구(-3.78%), 중구(-2.73%), 동구(-2.63%), 수성구(-2.07%) 순으로 하락했다. 지난해 11월 셋째 주 시작된 하락이 27주째 이어지고 있다. 반년째 집값이 하락하고 있는 셈이다.
대구, '공급 폭탄'에 하락 거래 지속…"급급매만 팔려"
집값 하락의 주된 원인으로는 '공급 폭탄'에 부동산 시장침체, 규제 등이 지목된다. 대구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10만9300여가구가 공급됐다. 올해는 1만9398가구 입주가 예정됐고 내년에도 3만2819가구가 입주한다. 사상 최대 입주 물량이던 2008년의 2만5066가구를 훌쩍 넘어서는 규모다.공급 폭탄은 미분양으로도 이어졌다. 대구시 미분양 공동주택 현황에 따르면 지난 3월 대구에 누적된 미분양 물량은 6572가구로 지난해 3월 153가구에 비해 43배 늘었다.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도 195가구에 달했다.
미분양이 늘어나면서 기존 주택 가격이 하락하고, 가격 하락에 따른 관망세가 짙어지며 매물도 적체되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은 지난 23일 기준 대구의 아파트 매물이 3만435건에 달한 것으로 집계했다. 올해 1월 1일 2만5782건과 비교하면 18.0% 증가했고 1년 전에 비하면 42.4%(9075건) 늘어 매물 적체가 심화한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거래 절벽 현상도 확인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0년 5만1395건에 달했던 대구 아파트 매매량은 지난해 2만1231건으로 줄었다. 올해 들어서는 3월까지 누적 2731건에 그쳤다.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6년 이래 1분기 기준 최저치다.
미분양 주택이 6500가구 넘게 쌓이고 집값도 1억~2억원씩 하락한 거래를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대구는 대부분 지역이 투기 과열이 우려되는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정부는 대구 집값이 상승을 거듭하던 2020년 11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대구 전역을 규제 지역으로 묶었다. 그해 집값이 누적으로 7.39% 뛴 영향이다.
미분양 6500가구 쌓였는데 '조정대상지역'…6월엔 풀릴까
조정대상지역은 주택 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 2배를 뛰어넘거나, 주택 청약 경쟁률이 5대 1 이상인 지역을 지정할 수 있다. 주택가격, 청약경쟁률, 분양권 전매량 및 주택보급률 등을 고려해 주택 분양 등이 과열되어 있거나 과열될 우려가 있는 지역이 대상이다.공급 폭탄에 집값이 급락하고 거래 절벽 현상이 나타나는 등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서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대구시는 최근 정부에 "조정대상지역을 해제하고 일부 지역은 미분양관리지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건의했다.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되면 1순위 청약 문턱이 낮아지고 다주택자나 세대원의 청약도 허용된다. 분양권 전매도 자유로워지며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 60% 제한, 양도소득세 중과 등의 규제도 완화된다.
조정대상지역 해제의 열쇠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쥐고 있다. 국토부 장관은 반기마다 열리는 주정심을 거쳐 조정대상지역을 해제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열린 하반기 주정심에서는 올해 상반기까지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한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모니터링을 마친 올해 상반기 주정심은 내달 열릴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원 장관은 지난 2일 인사청문회에서 조정대상지역 해제 요구가 빗발친다는 질의에 "면밀히 검토해보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규제 완화를 내세운 새 정부 정책 기조에 조정대상지역 해제 기대감도 높아졌지만, 전문가들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낸다. 급격한 규제 완화가 자칫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전 정부가 조정대상지역을 과도하게 늘린 문제가 있다. 규제를 풀긴 해야 한다"면서도 "규제가 일시에 풀리면 시장의 혼란이 불가피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투기과열지구인 대구 수성구를 조정대상지역으로 완화하는 등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올해 정부에 규제지역 해제를 요청한 지자체는 대구시를 포함해 울산·천안·창원·포항·김포·동두천·안산·파주시 등 1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