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단어나 오랫동안 외우고 있던 비밀번호가 곧바로 떠오르지 않을 때, 우리는 “치매에 걸린 것 아닌가”란 공포에 휩싸이곤 한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망각을 두려워하고 기억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산다.
《우리는 왜 잊어야 할까》는 기억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망각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 스콧 A 스몰은 노화와 치매를 전문으로 다루는 의사이자 미국 컬럼비아대 신경학·정신의학 교수다. 그는 더 잘 기억하려고 애쓰는 현대인들에게 “잊어야 행복하다”는 잠언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기억 강박에서 벗어나 유익한 망각의 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저자는 우리의 망각 대부분은 ‘정상적 망각’이라고 강조한다. 지금껏 망각은 기억의 반대항으로서 기억 체계의 결함이자 우리 뇌의 한계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뇌에는 기억하기 위한 도구가 있는 것처럼 망각하기 위한 도구도 들어 있다. 저자는 인간의 인지능력과 창의력, 정서적 행복과 사회적 건강을 위해 망각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만약 인간이 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면 끔찍한 일을 겪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자폐스펙트럼장애(자폐증)다. 자폐증 환자들은 매우 뛰어난 기계적 암기 능력을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부사항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잊어버리지 못하는 탓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따로 인식할 뿐 얼굴 전체로 통합하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도 세부사항을 망각하고, 일반화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증상이다. 사고나 자연재해 등 심각한 사건을 겪고 그 공포감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고통을 느끼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도 잊지 못해 생기는 병이다.
책은 정상적 망각이 아닌 병적 망각, 즉 치매에 대해 과도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도 말한다. 우리는 치매를 뭉뚱그려서 그저 끔찍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실제로는 치매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 초기 단계의 인지 감퇴를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치매 환자 중 인지 능력의 많은 부분을 잃고도 여전히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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