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청약 시장에 먹구름이 끼었다. 수도권 청약 경쟁률이 지난해 반 토막 수준으로 내려앉는 등 불붙던 청약 열기가 시들해진 모습이다. 지방에 이어 수도권에서도 미분양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대출 규제가 강화된 데다 갈수록 금리가 치솟고 있어 실수요자들의 자금·금융비용 부담이 커진 탓이다. 여기에 지난 10일 출범한 정부가 청약 제도 개선을 예고하고 있어 대기 수요가 쌓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 수도권 청약 경쟁률, 지난해 반 토막
13일 부동산 전문 리서치 업체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2일까지 수도권 지역의 1순위 청약 경쟁률(LH의 공공분양·사전청약 제외)은 13.80 대 1이다. 지난해 연간 청약 경쟁률(30.40 대 1)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2020년엔 지난해보다 높은 36.30 대 1을 기록했다.1순위 청약 경쟁률 하위 단지를 보면, 주로 경기에 집중돼 있다. 이달 초 경기 연천군에서 분양된 1호선 전곡역 제일풍경채 리버파크는 전체 809가구 일반분양에 청약자 수는 673명에 그쳤다. 1순위 청약자는 355명뿐이었다. 지난달 분양한 경기 동두천시 생연동 브라운스톤 인터포레도 276가구 모집에 246명만 청약했다. 1순위 청약자 수는 136명에 불과했다.
실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3월 전국 미분양 주택은 2만7974가구다. 전월에 비해 10.8% 증가했다. 특히 수도권 미분양은 2921가구로 26.0% 뛰어 상대적으로 증가 폭이 컸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수년간 신규 공급이 집중된 대구 등 일부 지방 뿐만 아니라 '청약 광풍'이 일었던 수도권에서도 미분양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도권 청약 시장은 청약과 동시에 마감되는 완판(완전판매) 행진이 이어졌다.
하지만 올 들어선 수도권에서조차 미분양 사례가 확산하고 있다. 입지가 좋은 브랜드 아파트나 공공택지 내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아파트의 경우 여전히 청약 경쟁률이 높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청약 미달 단지가 크게 늘어난 데다 미계약도 속출하고 있어서다.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를 완화할 의지를 내비치고 있어 건설사들이 좋은 입지에 있는 단지의 분양 자체를 미루려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렇다 보니 더 좋은 단지를 기대하는 실수요자들이 청약통장을 사용하는 시기를 계속 저울질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전략만 잘 짜면 내 집 마련 기회 될 수도"
이같은 배경에 강화된 대출 규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현재 총대출이 2억원을 넘는 차주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를 받고 있다. 연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의 40%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오는 7월부터는 이런 규제가 강화돼 총대출이 1억원만 넘어도 DSR 40% 규제가 적용된다. 이렇다 보니 분양을 받으려고 해도 대출 규제 때문에 포기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갈수록 치솟고 있는 대출 금리도 실수요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일각에선 정부가 추진할 청약제도 개선에 대한 기대로 실수요자들이 청약을 꺼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유출된 새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 계획서 세부 내용을 보면, 정부는 올 하반기 청약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일단 1인 가구 등 청년층이 선호하는 소형평수에 추첨제 공급을 확대할 방침이다. 60㎡이하 소형평형 구간을 신설하고, 소형평형에 대해선 추첨제 비중을 확대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또 특별공급도 재설계할 예정이다. 현재는 투기과열지구 내 분양가 9억원 초과에 대해선 특별공급이 불가한 상태인데, 이것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생애 최초 요건을 완화해 청년 대상 공급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 또 인구·가구 등 사회 변화를 반영해 현재 가점제를 전반적으로 바꾼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서울 영등포동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아무래도 실수요자들은 정부의 각종 규제 완화와 제도 개선으로 청약 여건이 더 좋아질 수 있는 기대를 갖게 된다"며 "좀 더 시간을 갖고 지켜보자는 관망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수도권 청약 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수도권 외곽 등에선 낮아진 청약 경쟁률도 미계약 물량이 쌓일 수밖에 없단 설명이다. 다만 이런 시기가 실수요자들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청약 가점이 낮은 경우엔 대기·관망 수요가 많은 시점이 유리할 수 있다는 논리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과거처럼 청약 시장 활황기에 경쟁률이 높으면 당첨 확률은 자연스럽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수도권 내에서도 브랜드나 역세권 여부에 따라 청약 경쟁률이 크게 차이가 나고 있는데 가족 계획과 생애 주기에 적합한 단지인지, 아파트 브랜드 인지도나 분양가 등은 적절할 지를 꼼꼼하게 살피면 청약통장을 굳이 쓰지 않고도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이혜인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