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12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1930년 7월 15일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구 회장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령으로 전역했다. 1957년 고 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둘째 딸인 이숙희씨와 결혼했다. 당시 두 대기업 가문의 결합으로 화제를 낳았다.
이후 구 회장은 10여년간 제일제당 이사와 호텔신라 사장 등을 지내며 삼성그룹에서 일했다.
하지만 1969년 삼성이 전자산업 진출을 선언하면서 LG(당시 금성)와 경쟁구도가 형성되자 구 회장은 LG그룹으로 돌아갔다.
구 회장은 이후 럭키 대표이사, 금성사 사장, 럭키금성그룹 부회장, LG 반도체 회장, LG 엔지니어링 회장, LG건설 회장 등을 역임하며 LG 그룹에서 전문경영인으로 활약했다. 2000년에는 LG유통의 식품서비스 부문과 함께 그룹에서 독립해 아워홈을 설립했다. 그가 회장으로 있던 21년간 아워홈은 국내를 대표하는 단체급식·식자재 유통 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고인은 대한민국 산업화 1세대로 꼽힌다. 1980년 ㈜럭키 대표이사 재직 시절, 구 회장은 기업과 나라가 잘 되려면 기술력만이 답이라고 여겼다. 구 회장은 당시 “우리는 지금 가진 게 없다. 자본도 물건을 팔 수 있는 시장도 없다. 오직 창의력과 기술, 지금 우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력을 중요시했던 구 회장은 “남이 하지 않는 것, 남이 못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가 걸어온 길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붙는다. 럭키는 1981년 ‘국민치약’이라는 수식과 함께 당시에 없던 잇몸질환을 예방하는 페리오 치약을 개발했고, 1983년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 폴리부틸렌테레프탈레이트(PBT)를 만들어 한국 화학산업의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1985년에는 화장품 ‘드봉’을 처음으로 해외에 수출했다. 1989년 금성일렉트론에서는 세계 최초로 램버스 D램 반도체를 개발했으며, 1995년 LG엔지니어링에서는 굴지의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국내 업계 최초로 일본 플랜트 사업을 수주했다.
구 회장은 음식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먹는 만큼이나 만드는 과정을 좋아했다. 미국 유학 중 현지 한인마트에 직접 김치를 담가주고 용돈벌이를 했다고 전해진다.
LG에서 화학, 전자, 반도체, 건설,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핵심사업의 기반을 다진 경영자가 LG유통에서 가장 작은 아워홈 사업부를 분사 독립할 때 주변에서 의아해 하던 일화는 유명하다. 역량에 비해 너무 작은 규모의 사업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런 취급을 받던 아워홈은 2000년 매출 2125억원에서 2021년 1조 7408억으로 8배 이상 성장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이숙희씨와 아들 본성(아워홈 전 부회장), 딸 미현·명진·지은(아워홈 부회장)씨 등이 있다. 구 회장은 당초 막내딸 구지은 부회장을 경영에 참여시켰으나 2016년 장남인 구본성 당시 부회장이 대표이사에 선임돼 형제간 분쟁이 불거졌다. 지난해에는 세 자매가 손 잡고 오빠를 해임하면서 구지은 부회장이 경영을 하고 있다. 형제들은 경영권, 배당, 지분매각 등을 두고 6년 넘게 다툼을 벌이고 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