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웃을 수만은 없었다. 백화점을 찾는 소비자들이 날이 갈수록 고령화하고 있어서다. 미래 주력 소비계층인 2030세대는 온라인 쇼핑에 익숙해지면서 백화점을 찾는 발걸음이 뜸해졌다. 손님들의 고령화는 실적 개선 뒤에 가려진 백화점업계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현대百의 도전
2020년 취임한 김형종 현대백화점 사장(사진)이라고 다를 리 없었다. 그는 취임 후 “현대백화점을 ‘젊은 백화점’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그 역할을 현대백화점이 직접 운영하는 스트리트 패션 편집숍 ‘피어’ 전담팀에 맡겼다. 사내 임원 회의 등에서는 “피어 매장은 돈을 벌어오지 않아도 좋다”고도 했다.대신 색다른 도전을 주문했다. 김 사장은 “피어의 성공 기준은 매출이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는지 여부”라며 “수익성과 타협해 새로운 시도를 포기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김 사장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피어는 2년 전부터 기존 백화점의 문법을 깨는 실험을 시작했다. 인적 구성부터 바꿨다. 피어 전담팀은 리더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을 모두 입사 5년차 전후 MZ세대(밀레니얼+Z세대)로 구성했다.
평균 연령은 32세.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전체 팀 중 가장 어린 조직이다. 순혈주의가 강한 현대백화점이지만 다양한 시각을 확보하기 위해 비유통사 출신 외부 인재도 채용했다.
매장 규모도 키웠다. 작은 공간에선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현대백화점 신촌점과 무역센터점, 더현대서울 등에 입점한 피어 매장은 다른 영패션 매장 평균 크기의 세 배가 넘는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영패션 부문은 젊은 층이 주고객인 만큼 객단가가 낮다”며 “이런 매장에 넓은 공간을 내준다는 것은 그만큼 수익성을 포기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호응하는 고객들
직매입 비중도 대폭 확대했다. 재고 부담을 감수하면서 소규모 신진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매입해 소비자들에게 선보였다. 기존 백화점에선 볼 수 없던 브랜드를 피어를 통해 선보이자 젊은 소비자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2020년부터 지난 1분기까지 피어를 통해 새로 현대백화점그룹 통합 멤버십 회원이 된 소비자는 2만여 명에 달한다. 이 중 2030 소비자 비중은 80%가 넘는다. 피어에서 구매한 뒤 현대백화점을 다시 찾는 재방문율 또한 60% 이상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피어는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2030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한 하나의 콘텐츠”라며 “젊은 소비자를 백화점으로 이끄는 ‘앵커 콘텐츠’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돈을 벌어오지 않아도 좋다”는 김 사장의 말이 무색하게 매출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피어 매출은 100억원으로 전년(30억원) 대비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는 피어 매장을 10개까지 늘려 170억원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게 현대백화점의 목표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