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20여 년 만에 ‘지구단위계획 수립 기준’을 전면 손질하고 나선 것은 각종 불필요한 규제를 정비해 주택을 포함한 개발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획일적으로 적용되던 지구단위계획 기준을 지역 여건에 맞춰 유연하게 수립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다. 지구단위계획 내 촘촘한 규제에 가로막혀 있던 역세권과 노후 저층 주거지 개발 사업이 탄력받을 전망이다. 중장기적으로 주거시설 확충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역세권 사업 부지 20% 늘어난다
1980년대 도시설계를 시작으로 2000년 법제화된 지구단위계획은 건축물 용도, 용적률 및 건폐율, 높이 등 지역 개발의 밑그림을 담고 있다. 현재 서울 시가지의 27%(100.3㎢), 494개 구역이 지구단위계획으로 지정돼 관리 중이다.서울시가 이번에 개정한 지구단위계획 수립 기준에는 역세권 사업 기준 완화, 불합리한 높이 규제 폐지 및 개선 등이 담겨 있다. 9일부터 역세권,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주택건설사업 등 신규 사업에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지난 3월 발표한 최상위 공간계획인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제시한 ‘도시계획 대전환’의 하나로 추진됐다. 최진석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은 “지난 20년간 운영해온 지구단위계획이 급변하는 도시 변화에 대응해 신속하고 유연한 계획을 유도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우선 지구단위계획 구역 내 역세권 사업 기준을 완화했다. 역세권 내에서는 역세권 활성화, 역세권 복합개발, 역세권 시프트, 역세권 청년주택 등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서울 내에서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특별계획구역 263개 중 192개(73%)가 역세권 입지에 속한다. 이처럼 개발 여력이 충분한 역세권 부지 활성화를 위해 역세권 입지 기준(승강장 경계 반경 250~350m 이내)을 최대 20% 확대하고, 상가 등 비주거용 비율도 용적률의 10%에서 5%로 완화한다. 상가 비율이 줄어들면 그만큼 주거시설을 지을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특별계획구역 내 역세권 사업 운영 기준에 입지, 면적, 접도, 비주거용 비율, 채광 방향 등에 대한 완화 근거를 마련해 이들 역세권 입지에 적용할 방침이다.
아파트 높이와 층수 계획 기준도 개선한다. 지구단위계획의 자체 높이 기준은 폐지하고, 정비계획별로 법령과 위원회 심의를 통해 결정하도록 했다. 그동안 아파트 채광과 일조 높이, 대지 내 이격거리 등을 ‘건축법’ 기준보다 강화한 지구단위계획 자체 기준으로 운영해 업계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소규모·저층 주거지 ‘걸림돌 규제’도 손질
제2종 일반주거지역(7층 이하) 등 저층 주거지에 대한 지구단위계획 수립 지침도 손봤다. 지역 필요시설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공공사업 연계를 의무화하고, 저층 주거지의 용적률 인센티브 항목에 기부채납뿐 아니라 공동개발, 특별건축구역(건축규제 완화)을 포함했다. 또 지구단위계획 내 소규모정비사업을 추진할 경우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해 사업 속도를 높여줄 방침이다.지구단위계획 구역 내 국·공유지를 포함해 개발할 경우 기존에는 공공이 민간에 유상 매각하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부지면적 5000㎡ 이상 개발 사업 때 공원, 주차장, 임대주택 등 지역 필요시설로 받는 무상양도 방식도 병행해 검토한다.
지구단위계획의 내용을 보조하는 설명서 역할로 도입됐지만 경직된 지침으로 작용해온 ‘민간 부문 시행 지침’도 바꾼다. 자치구에 권한과 채임을 부여하고 자율성을 보장하는 게 핵심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자치구 심의·자문을 통해 지구단위계획 기준을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게 됐다.
서울시는 지구단위계획 수립 기준을 5년마다 재정비해 도시계획 관련 규제를 지속해서 발굴 개선하고, 도시계획 규제 개선 전담 조직도 운영할 계획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지난 20여 년간 각종 규제가 추가되면서 지구단위계획이 개발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며 “이번에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고, 사업장 특성에 따라 인센티브를 마련한 것은 정체돼 있던 개발 사업을 활성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