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일 쌀 12만6000t을 사들여 시장에서 격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쌀 과잉 공급으로 가격이 급락해 식량 생산 기반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는 농민들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대형마트 등 소매점에서 파는 쌀 가격이 예년과 비슷하거나 일부에선 오른 데다 쌀을 원료로 한 즉석밥 등 식료품 가격이 큰 폭으로 뛰고 있어서다. 인플레이션으로 식료품값이 전반적으로 급등하는 가운데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하락해야 할 쌀 가격까지 정부가 떠받쳐주면서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쌀값 급락 맞나…이유는
농림축산식품부는 오는 16일부터 2021년산 쌀 수매를 위한 입찰을 시행할 예정이다. 최소 입찰 물량을 100t에서 20t으로 낮추는 등 수매 요건을 완화해 목표량 12만6000t을 모두 사들일 계획이다. 정부가 수매에 나선 건 쌀 가격이 올해 크게 하락하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달 쌀(20㎏) 도매가격은 평균 5만426원이었다. 1년 전 5만8523원에 비해 13.8% 하락했다. 하락폭은 1월 -7.4%에서 2월 -9.1%, 3월 -10.4% 등으로 커지고 있다.쌀값이 전년 대비 하락한 건 수요보다 생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쌀 생산량은 388만t이었다. 하지만 수요량(추정치)은 361만t에 그쳤다. 생산량의 6.9%에 이르는 27만t이 초과 생산된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초과 생산량이 예상 생산량의 3%를 넘으면 곡물을 수매할 수 있다’는 ‘양곡수급안정대책 수립·시행 등에 관한 규정’을 근거로 수매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정한 수매량도 초과 생산량과 일치한다. 정부는 지난 2~4월 14만4000t의 쌀을 수매해 격리했다. 이번에 사들이는 12만6000t을 더하면 초과 생산량 전부를 매입하게 된다.
올 들어 가격 하락폭이 두드러지는 건 기저효과 때문이다. 2020년엔 태풍으로 작황이 좋지 않아 쌀 생산이 급감하면서 쌀값이 급등했다. 2021년산 쌀 가격은 전년 대비 하락했다. 여기에 유통업체들이 그동안 확보한 쌀을 시장에 많이 내놓은 것도 쌀값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한 곡물유통업체 대표는 “재고가 많은 지역농협 등이 최근 투매에 가까운 가격에 물량을 풀고 있다”며 “올해 추석이 작년보다 10일 이상 일러 햅쌀 출하가 당겨질 것으로 예상하고 재고를 서둘러 처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비자는 체감 못 해
소비자들은 정부의 쌀 추가 수매 조치에 대해 ‘소비자 현실과 동떨어진 결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주요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쌀 가격은 품목에 따라 일부 오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말 A대형마트에서 이천쌀(10㎏)은 1년 전보다 1100원 오른 4만6900원에 판매됐다. 다른 대형마트에선 이 기간 의성쌀(10㎏) 가격이 3만4900원으로 동결됐다. 3월 도매가격이 10% 이상 떨어진 것과는 대조적이다.A대형마트 관계자는 “호남미(20㎏)가 1만원가량 싸지는 등 가격이 하락한 품목도 있지만 평년과 비교해서는 전체적으로 10%가량 높은 수준”이라고 전했다.
실제 올해 쌀 가격은 작년을 제외하면 역대 최고 수준이다. aT 자료를 보면 2년 전인 2020년 4월 20㎏짜리 쌀의 평균 도매가격은 4만6990원인 데 반해 올해는 5만426원에 달한다. 정부가 종전에 시장격리를 했던 2017년의 3만1800원에 비해선 올해 가격이 58%나 높은 수준이다.
쌀을 원료로 만든 즉석밥은 가격이 큰 폭으로 뛰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 지난달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 유통채널에서 햇반(210g) 평균 가격은 1982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 1769원보다 12.0% 올랐다. 이 기간 오뚜기밥(210g)은 1289원에서 1417원으로, 햇반 컵반(고추장제육덮밥)은 3620원에서 4268원으로 뛰었다. 쌀값은 떨어졌지만 포장재와 제조공정에 필요한 연료 등의 가격이 크게 오른 영향이란 게 식품업계 설명이다.
강진규/박종관/한경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