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아니었던 사람은 없지만, 어른이 되고 나면 그때의 기억과 감정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방정환이 1923년 어린이날을 제정한 것도 어린이였던 시절을 떠올려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아이와 같이 읽어볼 책이 여럿 출간됐다.
《안데르센 메르헨》(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문학과지성사)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 작가인 안데르센의 대표작 42편을 한 권에 담았다.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빨간구두’, ‘눈의 여왕’, ‘벌거벗은 임금님’ 등이다. 메르헨은 독일어다. 옛이야기, 민담, 전래동화 등을 뜻한다.
1805년 덴마크에서 태어난 안데르센은 서른 살인 1835년부터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세간의 시선은 탐탁지 않았다. 당시 아동 문학은 재미가 아니라 교육을 위한 것이었다. 일부 비평가는 “어린이를 속이는 글을 쓴다”고 했다. 하지만 1845년 발표한 ‘미운 오리 새끼’가 대성공하면서 어른도 아이도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가 남긴 160여 편의 동화는 현재 150여 개 언어로 읽히고 있다.
프랑스의 샤를 페로나 독일의 그림 형제가 옛이야기의 원형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면, 안데르센은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본인의 경험과 상상력, 화려한 묘사를 더해 새로운 형태의 동화를 썼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결말만 있는 건 아니다. 상상력 가득한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 어린이들에게 밝히기 불편한 현실을 은유적으로 담았다. 동화를 통해 인생의 진실을 담으려 했다는 설명이다.
《4월 그믐날 밤》(방정환 지음, 길벗어린이)은 1924년 방정환이 발표한 동화다. 어린이날을 만든 사람으로만 기억되고 있지만, 사실 그의 본업은 아동문학가다. 일본 도요(東洋)대에서 아동문학과 아동심리학을 공부한 그는 잡지 ‘개벽’에 동시 ‘어린이 노래-불 켜는 이’를 발표하고, 어린이라는 말을 보급했다. 1923년 3월에는 잡지 ‘어린이’를 창간해 한국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이 잡지에 실린 동화 중 하나가 《4월 그믐날 밤》이다. 어린이날 축제를 준비하는 꽃과 동물의 모습을 그렸다. 꾀꼬리는 축제에서 독창해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목병에 걸리고 그런 꾀꼬리에게 참새가 꿀물을 전한다. 제비는 5월이 오는 줄도 모르고 잠든 꽃과 벌레를 깨우러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날이 밝자 축제가 순조롭게 시작되고 모두의 얼굴에 기쁨이 차오른다.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출간된 이 책에는 원작의 분위기를 더욱 화사하게 해주는 그림이 입혀졌다. 방정환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장정희 박사의 해설도 실렸다.
《너의 권리를 주장해》(국제앰네스티 외 지음, 창비)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윈한 인권 가이드북이다.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공저자로 참여했다. 졸리는 서문에서 “만일 모든 정부가 약속을 지키고, 모든 어른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권리를 존중한다면 이 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아동 권리의 이론과 현실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고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책에서 소개하는 아동의 권리는 1989년 채택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바탕을 둔다. 18세 미만 아동의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를 담은 협약으로 미국을 제외한 세계 196개국이 비준했다. 아동의 권리는 아동이 어른에게 복종하는 소유물이 아니라는 점에서부터 출발한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이런 기본적인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나라도 많다. 한국에선 ‘충분히 놀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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