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가 사랑한 시인
2일 대산문화재단와 한국작가회의는 "오는 12일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는 문인 9명에 대한 기념문학제를 연다"고 발표했다.1922년 태어난 문인 중 김구용·김차영·김춘수·선우휘·송창섭·여석기·유정·정병욱·정한숙 등 9인을 대상 문인으로 선정했다. 행사 기획위원장을 맡은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삶이나 약력이 아니라 작품에 대한 평가를 기준으로 삼았다"며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제적 작품을 발표한 이들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탄생 100주년 시인 중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건 김춘수 시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하고 시작하는 시 '꽃'은 교과서에도 실려 널리 알려져 있다. BTS는 ‘Serendipity’에서 이 시를 “네가 날 불렀을 때/나는 너의 꽃으로/기다렸던 것처럼/우리 시리도록 피어”로 변주하기도 했다.
문예지 <문학사상>은 5월호 커버스토리로 오주리(시인·평론가)의 ‘김춘수 탄생 100주년을 기리며’를 실었다. 오 평론가는 여기에서 “김춘수 문학관이 지어지기를 기다린다”며 “객관적 자료와 지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김춘수 평전이 집필돼 출간되기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현재는 고향 통영에 유품전시관만 있다.
다만 김춘수 시인은 친군부행위라는 오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문인이기도 하다. 1981년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11대 전국구 국회의원(현 비례대표)이 됐다. 그가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찬양하는 헌정시를 지었던 일은 문단의 상처로 남아 있다.
김춘수 시인 외에도 이들의 작품 세계는 다채롭다. 정병욱 선생은 윤동주 시인의 친구이자 후배로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를 후대에 전한 인물로 유명하다. 유정 시인은 시뿐 아니라 필명 '유유정'으로 <상실의 시대>를 한국어로 옮기는 등 번역 활동도 활발히 했다.
윤정모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문학도 작가가 당대 현실과 맞부딪히며 갈등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창작의 결실을 맺는다"며 "이번 문학제가 젊은 세대와 함께 한국 문학의 전통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소통하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대행사 가을까지 이어져
올해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의 주제는 '폐허의 청년들, 존재와 탐색'이다. 1922년생은 만으로 아홉살이 되던 해인 1931년에 만주사변을 겪는다. 스무살이 되는 1942년에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해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다. 김 교수는 "유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에 해방과 한국전쟁이라는 한국 근대사의 비극을 겪은 1922년생 문인들의 활동 기간 절정은 1950~1960년대"라며 "이들이 겪었던 폐허와 존재에 대한 탐색을 함께 읽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작품세계를 살펴보는 심포지엄은 이달 12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교보컨벤션홀에서 열린다.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의 사회로 김응교 교수의 총론 등 발표가 이어진다. 각 문인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진다. 예컨대 이경수 중앙대 교수는 이날 논문 '김춘수 시와 통영의 로컬리티 - 장소, 인물, 언어를 중심으로'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간 김춘수 시에 대한 연구들이 주로 관념적인 측면에 주목했던 것과 달리, 시인의 고향이자 작품 활동의 토양인 통영을 중심으로 그의 시 세계를 분석한다. 심포지엄은 유튜브로 생중계된다.
젊은 작가들이 이들의 작품을 낭독하는 '문학의 밤' 행사는 5월 13일 오후 7시 서울 관수동 전태일기념관 2층 공연장 울림터에서 진행된다. 민구·김현·권민경·백은선 등 젊은 시인들이 선배 문인의 작품을 낭독한다. 악기 연주와 여러 공연도 이뤄진다. 다만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무관객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된다.
이밖에 각종 부대행사가 가을까지 이어진다. 6월 25일 고려대에서는 대산문화재단·한국시학회 주최로 '탄생 100주년 시인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9~10월 교보문고 광화문점에는 화가 권기범 등이 참여하는 '김춘수 탄생 100주년 시그림전'이, 10월 15일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에서는 대산문화재단·여향예원 주최로 '김춘수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 문학콘서트'이 열린다. 여향예원은 이기철 시인이 꾸린 시 창작 공간이다. 이기철 시인은 대학 시절 공모전 당선자로 심사위원장 김춘수와 인연을 맺은 뒤 문학적 교류를 이어왔다. 지난해 김춘수의 삶과 시를 다룬 <김춘수의 풍경>을 출간하기도 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