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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호황에 취해 멍들어가는 건설사 경쟁력 [김은정의 클릭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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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쉽게 돈 벌 수 있는데 뭣하러 골치 아픈 해외로 나가겠습니다." 사석에서 만난 대형 건설사 임원은 최근 해외수주 실적이 급감했다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잘 나가는' 아파트 브랜드를 앞세우면 재개발·재건축 공사를 따기 쉽고, 수천억원짜리 공공건설 공사는 적당히 운만 좋으면 수주할 수 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이미 해외 시장에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인도 건설사가 무섭게 치고 올라온 데다 수익성이 좋은 공사는 설계·기술 요구가 까다로워 쉽사리 시도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실제 올 들어 건설사들의 해외 공사 수주 실적은 최근 5년간 평균치를 밑돌고 있다. 올 들어 4월까지 건설사들의 해외 공사 수주 실적은 94억달러(약 11조8000억원)다. 2017~2021년 이 기간 평균 해외 공사 수주 실적은 110억달러다. 최근 20년 간 이 기간 해외 공사 수주 실적이 100억달러를 밑돈 건 손에 꼽을 정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예상보다 장기화하고 있는 데다 코로나19 확산을 전후해 중동 지역의 발주가 줄어든 영향도 있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선 단순히 글로벌 여건에 따른 현상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 주택 시장이 호황을 거듭하다 보니 굳이 건설사들이 해외 시장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형 건설사들의 국내 주택 매출 비중이 60~70%에 달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게다가 가격·설계·시공 경쟁력 모두 내세울 게 없으니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들조차 해외 공사 수주에 크게 애쓰지 않고 있다. 또 다른 건설사 임원은 "괜히 리스크(위험요인) 관리가 쉽지 않은 해외 시장에 매달렸다가 자칫 잘못하면 뒤치다꺼리에만 임기를 다 보낼 수 있어 몸을 사린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건설사들의 해외 경쟁력은 빠르게 약화하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정책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시장에서 국내 건설사의 시공 경쟁력은 2017년 7위에서 2018년 10위로 떨어졌다. 중국(1위)·터키(9위) 등에 뒤처지고 있다. 설계 경쟁력은 13위로 포르투갈(8위)·인도(12위)에도 밀리고 있다. 특히 플랜트·토목 분야의 시공·설계 경쟁력은 매년 순위가 하락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 방향도 건설사들의 해외 경쟁력 약화를 부추긴다는 시각도 있다. 현행 입찰 제도에선 대규모 공공건설 공사조차 기술 평가의 진입 장벽에 높지 않아 입찰 가격만 잘 맞추면 수주가 가능하다.

오히려 기술 변별력이 크지 않으니 건설사들은 사회적 책임 등 가점 받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이 때문에 심사를 맡은 공무원·교수들에 대한 건설사들의 물밑 작업도 여전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관계자는 "재개발·개건축 수주가 쉽지 않은 중견 건설사들의 경우 이런 공사에 더 목을 맬 수 밖에 없다"며 "공사 한 건이 나올 때 마다 수억원의 접대비가 비공식적으로 할당되기도 한다"고 귀뜸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가 문제라고 우려한다. 그간 건설사들은 국내 주택 시장의 양적 성장에 기대 몸집을 키웠다. 하지만 국내 주택 시장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따라 크게 요동치고, 갈수록 성장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내수에 편중된 사업 구조로는 중장기적인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미 미국·스페인 등 건설 강국과 중국·인도 등 신흥국 건설사들은 공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곤두박칠치고 있는 수익성을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건설 기술 약화가 결국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건 자명하다"면서도 "CEO의 임기가 짧은 한국 시장에서 건설사들이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 기술 역량 배양에 주력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가 각종 입찰 제도에 기술 평가 기준을 높이는 방식으로 유인책을 줘야 건설사들이 기술개발 투자에 눈을 돌릴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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