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이 자사에 30년 동안 기내식을 독점 공급하기로 계약한 스위스 게이트그룹 경영진을 고소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옛 경영진이 게이트그룹에 기내식 독점 공급권을 헐값에 내줬고, 이 과정에서 게이트그룹이 금호의 자금 조달을 돕는 방안을 공모했다고 판단해서다. 대한항공과의 합병을 앞둔 아시아나항공이 잠재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행보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3월 게이트그룹과 한국법인 게이트고메코리아(GGK)의 주요 경영진 4명을 금호그룹 경영진 배임혐의와 연계된 공범으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자비에르 로시뇰 전 게이트그룹 회장과 얀 피시 전 게이트그룹 아시아태평양 사장 등이 대상에 포함됐다.
아시아나항공은 박삼구 전 금호 회장 등 경영진의 배임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로 게이트그룹과 금호 사이의 공모 정황이 충분히 드러났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박 회장 등 금호 경영진이 2016년 5000억원대로 추산되는 기내식 독점 사업권을 1333억원만 받고 게이트그룹에 매각한 혐의를 잡고 수사 중이다. 박 회장 등은 2015년 워크아웃 과정에서 상실한 그룹의 지배권을 되찾기 위해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인 금호산업 주식을 다시 사들이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파트너로 게이트그룹을 끌어들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기내식 계약 체결 당시 2047년까지 30년간 순이익을 보장하는 이례적 특혜를 제공한 사실도 드러났다.
기내식 사업권을 따낸 게이트그룹은 금호기업(현 금호고속)이 발행하는 최장 20년 만기 신주인수권부사채(BW) 1600억원어치를 무이자로 인수했다. 이 같은 금융 지원이 금호의 배임혐의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방증한다는 게 고소인 측 주장이다. 아시아나항공은 게이트그룹 측을 상대로 기내식 공급 계약 무효 확인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1월에 제기하는 등 법적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오는 6월 예정된 박 회장의 형사재판 결과와 맞물려 이번 고소로 게이트그룹의 공모 혐의가 확인될 경우 양측의 기내식 계약이 배임에 따른 불법계약인 만큼 민법상 무효라는 주장을 펼 것으로 알려졌다. 게이트그룹의 지분 50%를 보유한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도 이번 고소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테마섹은 수익률 이상으로 투자회사들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지표에 신경쓰고 있다”며 “주요 지분을 보유한 회사의 임원이 형사고소 대상이 된 만큼 테마섹 내에서도 해당 사건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을 추진 중인 대한항공도 이번 고소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결과에 따라 수천억원에 달하는 유동성 향방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은 계약에 따라 2047년까지 보장한 순이익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 이에 따른 손실 규모는 최소 25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아시아나항공의 잠재적 손실은 고스란히 대한항공의 재무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한항공은 올 2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아시아나항공 지분 인수를 조건부로 승인받고, 현재 미국 등 해외 경쟁당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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