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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설명해줘야 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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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 자체가 권력이었다. 설명해야 하는 삶과 설명해주는 삶이 가진 권력의 크기는 다르다. 앉아서 설명하고 해석해주는 데에서 권력이 작동한다.’

최근 읽은 《20대 여자》란 책의 서문 중 한 대목이다. 필자는 이 글을 보면서 면접장이 불쑥 떠올랐다. 대학과 직장의 면접장에서 면접관은 묻고, 면접자는 대답하고 설명한다. 면접관이 설명하지 않아도 면접관이 가진 위상은 그냥 알게 된다. 그는 면접자를 평가할 능력과 지위가 있으며, 면접자의 당락에 중요한 결정을 한다는 것을. 다시 시선은 경복궁역에 다다랐다. 장애인단체의 출근길 시위가 이뤄지는 곳이다. 장애인들은 이동할 권리를 얻고자 오체투지라는 싸움을 선택했다. 바닥은 딛고 서는 곳이어야 하지만, 그들 장애인은 휠체어에서 내려오면 발 딛고 설 수 없다. 바닥을 중심에 두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이동할 권리에 대한 권력은 상이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출근길 지각할까 봐 동동대는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들의 투쟁은 이해는 되지만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타인의 권리는 침해해도 되는가의 문제 제기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 타인의 권리에 방점을 찍고 장애인단체 대표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권리’라는 것이 누군가는 설명하지 않아도 얻어지는 것이라면, 또 누군가에게는 수백 번 설명해도 얻어질 수 없는 것이라면, 이미 권력은 누군가에게 있음이 판명된다. 이동할 권리에 대한 권력이 장애인들에게는 없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들의 오체투지는 ‘설명’이다. 설명해주는 삶이 주는 서러움이다. 그 서러움을 인지하지 못하는 정치인의 공감 능력을 마주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우리는 과연 선진국인가. 작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TAD)는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인정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개념도 있다. 1974년 유엔장애인환경전문가 회의에서 제기되고 여러 나라에 도입됐다. 또 베리어 프리(barrier free)는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물리적 장벽과 심리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이다. 공공시설을 지을 때 문턱을 없애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로 확산했다. 경사면 도로, 저상버스, 장애인용 엘리베이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 선진국에서 살아가는 국민인가를 의심한다. 장애인의 지하철역 출근길 투쟁의 발생 원인보다는 비장애인의 권리를 먼저 이야기하는 사회는 결코 선진국의 모습이 아니다.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는 끊임없이 설명한다. 자신의 생각과 처지를 설명해야 세상이 귀 기울여주는 삶이 갖는 무게, 그 책임을 똑바로 응시하고자 한다. 21대 남은 임기 2년. 국민의 삶 위에서 오체투지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비장애인 국회의원으로서 모든 장애인의 출근길을 열지 못한 것에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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