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코퍼레이션(옛 현대종합상사)이 신사업 확대의 일환으로 역점 추진했던 차량용 경량 플라스틱 제조업체인 신기인터모빌 인수가 1년만에 끝내 무산됐다. 중계무역(트레이딩)에 기반을 둔 종합상사 이미지에서 벗어나 전기자동차 부품 사업 등 신사업 영역을 확대하려고 했던 정몽혁 현대코퍼레이션 회장(사진)의 구상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대코퍼레이션은 신기인터모빌의 지분인수 협상을 종결했다고 지난 21일 공시했다. 현대코퍼레이션은 지난해 5월 현대자동차 1차 협력사인 신기인터모빌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양측은 한 달 후인 같은 해 6월 경영권을 비롯한 지분 70%을 인수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협의와 실사를 진행했다.
현대코퍼레이션 관계자는 “협의 과정에서 발생한 이슈 해소를 위해 심도 깊은 논의를 진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신기인터모빌의 주식매매를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회사측은 구체적인 M&A 무산 배경에 대해선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경영권을 비롯한 지분 가격 책정에서 양측이 큰 이견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기인터모빌은 1970년 설립된 차량용 플라스틱 부품 전문 생산업체다. 1987년 현대차 협력업체로 등록된 이후 33년간 콘솔박스, 엔진커버, 휠가드, 내장트림 등 고기능 경량화 플라스틱 부품을 현대차와 기아에 주력 공급해 왔다. 지난해 매출은 3816억원이며, 영업이익은 110억원을 올렸다. 2018년부터 4년 연속 영업흑자를 내고 있다. 최대주주는 지분 70%를 보유한 ㈜신기다.
현대코퍼레이션은 2016년 현대중공업그룹에서 분리 독립한 현대코퍼레이션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그룹을 이끄는 정 회장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 회장의 다섯째 동생인 고 정신영 씨의 외아들이다. 현대코퍼레이션은 2000년대까지 범(汎)현대그룹의 수출입 창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주요 계열사의 수출 역량이 높아지고, 기업들이 무역금융을 줄이면서 종합상사의 사세는 급격히 하락했다.
현대코퍼레이션은 지난해 3월 사업영역 다변화를 위해 사명에서 ‘상사’를 떼고 현 사명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어 자동차 및 전기차 부품 제조, 친환경 소재 및 복합 소재와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 구축 관련 사업 등을 정관의 목적사업에 추가했다. 상사 본연의 기능인 트레이딩에서 벗어나 신사업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해야 한다는 정 회장의 강력한 의지였다. 신기인터모빌은 사명 변경을 통해 신사업 진출 확대를 선언한 후 이뤄진 첫 번째 인수합병(M&A) 시도였다.
당시 현대코퍼레이션은 신기인터모빌 인수를 계기로 부품 제조업 분야 기반을 강화할 계획이었다. 회사의 기존 모빌리티 사업이 확보하고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와의 시너지 창출도 인수 효과로 기대됐다. 해외 자동차 제조사를 상대로 한 부품 수출 시장 개척 등을 본격화하겠다는 것이 정 회장의 구상이었다.
특히 현대코퍼레이션의 사세는 국내 종합상사 ‘빅3’인 포스코인터내셔널, LX인터내셔널, 삼성물산(상사 부문)에 크게 뒤쳐진다. 현대코퍼레이션은 지난해 매출 3조7824억원, 영업이익은 350억원을 올렸다. 국내 최대 종합상사인 포스코인터내셔널 영업이익(5853억원)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대코퍼레이션의 영업이익은 수년째 매년 300억~400억원 수준에 머물며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이 추락한 회사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야심차게 추진했던 것이 신기인터모빌 인수였다”며 “앞으로도 M&A를 통한 신사업 진출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현대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앞으로도 쉽지 않겠지만 신사업 확대 등을 위해 계속 도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