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 22일 06:5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LG생활건강이 지난 20일 북미 화장품 브랜드 '더크렘샵'의 지분 65%를 1485억원에 인수한다는 공시를 내자 시장은 들썩였다. 한동안 주춤하던 LG생건의 주가는 다음날 2.28% 오르며 94만2000원에 장을 마쳤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 이번 딜을 주목하는 이유는 '잔여지분 35%에 대한 콜옵션과 풋옵션을 동시에 조건을 단 점' 때문이다. LG생건은 계약내용에 대해 "당사는 2022년 4월20일에 이사회 결의 후 더크렘샵의 지분 65.0%를 취득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며 "매수인(당사)과 매도인은 거래 종결 후 5년이 경과한 시점부터 잔여지분 35.0%에 대하여 매수/매도할 수 있도록 콜/풋옵션을 부여함"이라고 공시를 통해 밝혔다.
LG생건이 인수한 더크렘샵의 65% 지분은 대주주이자 창업주인 김선아(Sunna Kim) 대표의 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인 교포인 김 대표는 K뷰티 트렌드를 접목시킨 창의적 제품으로 북미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겨냥했다. 특히 헬로키티, 디즈니, BT21 등 인기 캐릭터와 협업(컬래버레이션)한 제품들이 인기몰이를 했다. 인스타그램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회사도 빠르게 성장했다. 2019년 261억원이던 더크렘샵의 매출액은 지난해 470억원으로 80.1% 뛰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15억원에서 119억원으로 급증했다.
LG생건이 이번 계약에 콜옵션과 풋옵션을 함께 넣은 까닭은 북미 시장을 잘 아는 더크렘샵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LG생건 관계자는 "우리가 직접 북미 시장에서 오래 사업을 했던 게 아니기 때문에 특히 MZ세대를 겨냥한 사업 노하우는 더크렘샵을 통해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본 것"이라며 "아직 더크렘샵의 경영진을 어떻게 구성할지 결정하진 않았지만 현지 인력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계약 조건에 넣은 콜/풋옵션의 자세한 내용은 이렇다. 양사간 거래 종결 이후 5년이 지난 시점에서 LG생건이 원할 경우 잔여지분 35%를 살 수 있는 권리(콜옵션), 5년이 지난 시점에서 LG생건이 원하지 않더라도 더크렘샵이 팔고 싶다면 LG생건에 잔여지분을 팔 수 있는 권리(풋옵션)를 모두 포함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IB업계 관계자는 "양측이 모두 경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라며 "LG생건은 현지 상황을 모르는데 처음부터 100% 지분을 인수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더크렘샵도 LG생건과 함께 기업가치를 더 키운 뒤에 지분을 파는 것이 투자 측면에서도 회사를 아끼는 창업주 입장에서도 더 나은 판단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잔여지분 35%를 누가 보유하고 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김 대표가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고 김 대표의 특수관계인 몇 명이 소수 지분을 갖고 있을 것으로 IB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LG생건은 그동안 차석용 부회장의 공격적 인수합병(M&A) 전략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영역을 넓혀왔다.
특히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한 M&A가 많았다. 2012년 일본 화장품 사업 강화를 위해 긴자스테파니를 1588억원에 인수했고 이듬해 일본 화장품 및 이너뷰티 업체 에버라이프를 3294억원에 사들였다. 이후 프루츠앤패션(2013년 210억원), R&Y 코퍼레이션(2014년 460억원), 리치의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사업권(2016년 514억원), 에이본재팬(2018년 1033억원), 에바메루(2018년 150억원), 에이본 광저우 생산법인(2019년 794억원), 더에이본컴퍼니의 미주 사업(2019년 1450억원), 피지오겔의 아시아 및 북미 사업권(2020년 1923억원), 리치의 북미 및 유럽 사업권과 치약 브랜드 유씨몰의 글로벌 사업권(2020년 773억원), 보인카(2021년 1170억원), 존슨앤드존슨의 도미니카 치실공장(2021년 1100만달러) 등을 잇따라 인수했다. 모두 화장품, 생활용품, 건강기능식품, 헤어케어 등 LG생건이 강점을 갖고 있는 분야의 기업들이다.
증권가에서는 중국의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조치 등으로 국내 화장품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곤 있지만 향후 성장 가능성에 대해선 긍정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박현진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은 "중국의 봉쇄 조치 강화로 올해 1~2분기 실적 기대치를 낮춰볼 수밖에 없게 됐다"면서도 "하반기로 갈수록 리오프닝 수혜, 중국발 수요 회복 등에 힘입어 성장률이 회복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