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오신 뒤 전통시장은 가보셨습니까?”
지난 19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 고공행진하는 물가 상승세를 소비자물가지수(CPI) 등 지표로 판단한다는 이 후보자의 말에 김수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되물었다. 그러면서 “무, 배추, 양파 가격은 아느냐” “쌀값이 얼마냐” “농민 친구는 있느냐”는 질문을 쏟아냈다. 답변을 이어나간 이 후보자에게 “가슴이 없고 머리로 답변한다”며 “국민의 숨소리를 들어야지 머리로 얘기하시면 안 된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같은 당 정일영 의원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는 방향에 찬성하느냐”고 물었다. 한은 총재 후보가 금리 방향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 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는 사실은 고려하지 않은 직설적 질문이었다.
정 의원은 이 후보자가 소유한 부동산이 여섯 채라고 주장하며 이 후보자를 몰아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 후보자 소유 부동산은 서울 아파트 한 채다. 나머지는 성인인 자녀 셋이 미국에서 각자 구입하거나 임차한 집 등이다.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은 이 후보자에게 “이 정권(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알박기 인사’라는 지적도 있다”며 “새 정부의 비전을 공유하겠다는 다짐 같은 게 필요하다”고 다그쳤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이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발언이었다.
이날 8시간 가까이 진행된 청문회에 전혀 알맹이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SNS에선 “코미디 같았다” “검증이 아닌 보여주기 쇼” “아마추어가 프로를 다그치는 꼴” 같은 혹평이 적지 않았다.
한은 총재는 때론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금리 인상을 결정해야 하는 자리다. 10년 만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대로 치솟은 지금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다. 1970~1980년대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었던 폴 볼커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국민들의 반발에 부닥쳤고 살해 위협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볼커가 인플레이션을 잡은 덕분에 미국은 이후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서민들의 아픔을 가슴으로 공감하라’는 의원들의 압박은 정치적으론 그럴듯하게 들릴진 몰라도 한은 총재에게 다그칠 얘기는 아니다.
이 후보자는 청문회장에서 “인기는 없더라도 선제적으로 금리 인상 시그널(신호)을 줘서 물가를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정책이 지금까지는 맞는다고 생각한다”며 “데이터를 보면서 성장과 물가를 균형적으로 바라보겠다”고 말했다. 한은 총재에겐 이 말이 더 어울리는 얘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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