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국내 최초로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을 밀착 취재해 화제가 됐던 다큐멘터리 ‘최후의 툰드라’. 그 후속편인 ‘가디언즈 오브 툰드라’가 최근 전파를 탔다.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툰드라에는 아름다운 설원과 경이로운 자연 풍광 대신 기후변화로 인해 황폐해진 자연과 그 변화 속에서 몸부림치는 인간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설원에서 신비한 오로라를 벗 삼아 순록을 유목하던 평화로운 삶 대신 기후온난화의 흔적과 곳곳에 자원개발을 위해 설치한 각종 기계장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나 유목의 삶을 이어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17세 청년은 불확실해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기후변화는 인간이 불러온 인재(人災)지만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것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은 기후변화에 대해 빙하가 좀 녹고 북극곰의 서식지가 줄어드는 일 정도로 치부한 채 자신의 삶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무관심했다. 하지만 2년여간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기후변화가 개인의 삶은 물론 전 세계가 셧다운되는 수준의 충격과 공포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세계 각국, 특히 선진국들은 안일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기후변화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비로소 진지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의 하나가 최근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발표한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1차 공개 초안이다. 일반 공시원칙(IFRS S1)과 기후 관련 공시(IFRS S2)로 구성된 이번 공개 초안은 기존 다양한 지속가능성 기준을 통합하는 체계와 내용이 중심이다.
이번 공개 초안에서 주목할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국제적으로 ESG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객관화하려는 시도가 본격화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시장 참여자들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인 가치 판단 기준을 재무적 숫자로 표현한다. 이제부터는 국제사회가 합의한 객관적 기준을 바탕으로 ESG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해 평가하고 기존 재무정보와 같은 질적·양적 공시를 통해 이해관계자와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눈앞의 현실로 닥친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가 힘을 합쳤다는 점이다. 목적은 동일하나 저마다 견해와 방법이 달랐던 단체와 조직들이 하나로 모이고 혼재했던 목소리가 일관성을 갖춰 나가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새삼 인식하면서 효율성과 효과를 동시에 높이기 위한 공동 보조가 시작된 것이다.
새로운 ESG 공시 체계의 등장은 기업뿐 아니라 정책당국, 시민사회에도 커다란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다가올 재앙을 피하고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툰드라의 유목민만이 아니라 나 자신, 우리 기업, 대한민국이 모두 나서야 할 일이다. 실패를 경험하며 돌아갈 시간적, 물리적 여유도 없는 상황에서 인류가 함께 생존을 위한 지혜의 총력전을 펼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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