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부가가치세 인상’이라는 화두를 꺼내 들었다. 국회 청문회 위원들의 질의에 대한 서면 답변에서 “국가부채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증세 등 세수 확충 노력이 필요하다”며 부가가치세 인상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부가세는 소득과 관계 없이 동일 세율이 적용돼 역진적이긴 하나, 인상분을 취약계층 복지 지출로만 활용한다면 소득 불평등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부가세 인상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사안이다. 대통령 직속 기구나 한국개발연구원(KDI), 여당 의원 등이 복지 재원이나 자영업자 손실보상 재원으로 부가세 인상론을 폈다. 그럼에도 세계적 경제학자이자 통화당국 수장 후보자가 부가세 인상 필요성을 제기했다는 데 새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인상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국가 재정이 증세가 불가피할 만큼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국가부채는 763조원이나 늘어 작년 기준 처음으로 2000조원을 넘어 2200조원에 이르고 있다. ‘국가가 고용주’임을 자처하며 관제 알바 양산, 공기관 마구잡이 신설, 공무원 증원 등에 세금을 뿌리거나 적자 국채를 찍어낸 결과다. 36%였던 국가채무 비율도 작년 47%로 치솟은 데 이어 2024년 6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 OECD 35개 회원국 중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르다.
문재인 정부만 탓하고 있을 수도 없다. 윤석열 당선인이 내건 공약을 지키는 데만 최소 266조원의 재정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증세를 고려할 수 있으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재촉한 1977년 부가세 도입이나, 박근혜 정부 때 조원동 경제수석이 ‘거위 깃털론’을 들먹이며 ‘꼼수 증세’를 시도하다 혼쭐이 나 3일 만에 철회한 것 등이 그 후폭풍을 잘 보여줬다. 증세 이전에 씀씀이를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 가뜩이나 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인데, 방만 재정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후보자가 증세를 거론한 것은 여야 할 것 없이 코로나 추경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는 국회에 재정 폭주의 위험을 알리려는 경고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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