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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력 따라 공모주 청약 차등…1억 운용사, 9조 '허수청약'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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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인사이트 4월 19일 오후 4시 51분

금융당국이 19일 공모주 수요예측 제도의 전면적인 개편에 나선 것은 현 제도가 온전한 가격 결정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2년간 기업공개(IPO) 시장이 호황을 보이자 기관투자가는 청약증거금이 없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앞다퉈 ‘묻지마 베팅’에 나섰다. 이로 인한 ‘오버베팅’ 현상은 공모가를 높여 결국 개인투자자의 피해를 유발하는 주범으로 지목됐다. 금융당국은 제도 개선을 통해 실수요 중심으로 기관투자가의 수요예측 참여를 유도하고 ‘뻥튀기 청약’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계획이다.
기관 청약 한도 적용될 듯
금융당국은 기관별 자기자본 및 펀드 운용 규모 등 자금여력에 비례해 공모주 신청 한도에 차등을 두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지금까지 모든 기관투자가는 배정 물량 전체를 인수하겠다는 주문을 낼 수 있었다. 아무런 제한 조치가 없다 보니 기관투자가는 한 주라도 더 받기 위해 최대한 많은 금액을 적어내는 ‘허수청약’이 난무했다.


올해 초 LG에너지솔루션 공모가 가장 극단적인 사례였다. 이 회사는 전체 공모 금액 12조7500억원의 75%에 해당하는 9조5625억원을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했는데, 공모주 청약에 참여한 680개 기관 중 86%에 해당하는 585곳이 최대 신청 수량인 9조5625억원어치의 공모주를 주문했다. 심지어 순자산 1억원의 펀드를 운용하는 운용사도 최대 신청 수량을 주문한 사례도 있었다. 수요예측 경쟁률이 2023 대 1까지 치솟고 총 주문금액이 1경5203조원에 달했던 이유다.

앞으로는 이처럼 납입 능력을 초과하는 주문은 사실상 어렵게 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기관투자가의 공모주 청약 한도를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제도 개편에 나섰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운용사, 연기금 등은 자기자본의 일정 배수 이상으로 청약하지 못하도록 하고 펀드는 순자산가치(NAV)에 비례해 최대 신청 한도에 차등을 두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이를 어기고 자기자본과 펀드 NAV를 크게 넘긴 주문은 불성실 수요예측 행위로 간주하고 증권신고서에 명시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증권사로부터 최근 2년간의 기관투자가 공모주 신청 및 배정 결과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하는 과정에서 주관사들에 수요예측 참여 기관의 자금 여력을 파악하고 비정상적인 주문은 사후 점검을 통해 일정 기간 수요예측에 참여하지 못하게 제재하도록 권고했다”고 말했다.
공모주 배정 방식 표준화
일각에선 뻥튀기 청약을 막기 위해 기관투자가도 개인처럼 공모 참여 때 청약증거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금융당국은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연기금 등이 청약증거금을 마련하기 위해 공모주 신청에 앞서 기존 보유 종목을 매도하면 증시에 충격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기관은 배정 물량의 1%를 인수 수수료로 내고 있어 증거금을 부과할 경우 이중 규제라는 지적도 있다.

금융당국은 수요예측 제도뿐만 아니라 증권사별 공모주 배정 방식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은 자사와 거래한 기간과 실적을 반영해 기관별 점수를 매기고 이를 반영해 주식을 배분하고 있다. 문제는 증권사마다 배정 기준이 제각각인 데다 비공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동일한 수량과 가격의 공모주를 신청했더라도 주관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기관투자가에 공모주를 더 많이 배정할 수 있다. 실제로 SK바이오팜과 하이브, 카카오뱅크 등의 상장 때 주관사와 이해관계가 있는 운용사에 공모주를 몰아줬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금융당국은 증권사마다 다른 기관 분류 기준을 일원화하고 배정 기준을 표준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업계는 수요예측 제도가 개편되면 기관투자가들이 실수요 중심으로 청약하는 현상이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허수 청약으로 공모가가 과도하게 높게 책정되는 현상이 상당 부분 개선돼 수요예측 제도의 가격 결정 기능이 한층 강화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일각에선 시장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는 반발이 나온다. 뻥튀기 청약은 일부 인기 공모 기업에 국한된 상황인데 모든 기업에 일괄적으로 청약 한도를 적용하면 투자심리가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청약 한도가 생기면 국내 기관은 해외 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적은 물량을 배정받게 돼 불만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예진/서형교/고재연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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