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역 인근에 거주하는 아버지를 둔 김모씨(36)는 최근 주택연금 가입 상담을 받았다. 아버지가 거주 중인 아파트 시세가 11억5000만원(공시가격 8억원)으로, 지난 2년간 50% 올랐지만 올 들어 집값이 조정 국면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는 “집값이 정점을 찍은 지금 가입하는 게 연금 수령액을 극대화하는 방법인 것 같다”고 말했다.
‘노후의 마지막 안전판’으로 꼽히는 주택연금 가입액이 85조원을 넘어섰다. 최근 금리 급등으로 부동산 시장이 하락 안정세로 돌아서면서 올해 서둘러 주택연금에 가입하는 게 유리할 것이라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집값 떨어져도 월 지급금은 그대로
18일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주택연금 보증잔액은 지난 2월 기준 85조2099억원으로 전년 동기(74조2066억원) 대비 10조원 이상 늘었다. 보증잔액은 주택연금 가입자가 100세까지 받을 수 있는 연금 총액(월지급금+개별인출금+대출이자+보증료)이다.증가세도 가팔라지고 있다. 주택연금 신규 가입액은 지난해 15조254억원으로 2020년(11조1030억원) 대비 35.1% 늘었다. 지난 2월 기준 월별 신규 가입액도 1조5790억원으로 코로나19 전인 2019년 말(1조552억원)보다 49.6% 급증했다.
주택연금은 만 55세 이상의 노년층이 자기 집을 담보로 제공하면 사망할 때까지 매달 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증하는 정책금융상품이다. 대출금리와 기대수명, 가입 당시 주택 시세 등에 따라 월 지급금이 결정된다. 공시가격 9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서만 가입할 수 있다.
주택연금 가입이 늘어나는 데는 ‘집값 정점론’이 한몫하고 있다. 향후 주택가격이 가입 때보다 하락하더라도 월 지급금이 달라지지 않는다. 주택 시세가 고점을 찍고 향후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지금 가입하는 게 이득이라는 설명이다.
작년만 해도 집값 상승폭 대비 월 지급액이 적다고 판단해 주택연금을 해지하는 사람이 급증했다. 주택연금을 중도 해지하면 집값의 1.5% 수준인 보증료에다가 여태 받아온 연금을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집값 상승분을 고려하면 재가입 제한이 풀리는 3년 뒤 다시 가입하는 게 오히려 이득일 수 있다.
올 들어 월별 해지 금액은 4000억원대에서 지난 2월 2791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해지 후 3년 뒤 재가입하면 집값 하락으로 오히려 손해를 볼 것이란 생각에 주택연금을 유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올 들어 혜택이 확대된 것도 주택연금 가입을 활성화한 요인으로 꼽힌다. 주금공은 그동안 주택 시세를 9억원까지만 인정해 월 지급액을 산정했는데 지난 2월부터 12억원으로 상한선을 높였다. 이에 따라 만 55세 가입 시 시세 12억원짜리 집을 담보로 지급하는 주택연금은 월 144만원에서 193만4000원으로 34.3% 인상됐다. 지난 1월부터는 최저생계비(월 185만원)만큼은 압류가 불가능해지면서 신용이 악화된 노년층도 지속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은퇴 후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만 65세까지 발생하는 ‘소득공백기간’ 동안 월지급액을 더 받을 수 있는 초기 증액형 상품도 인기다. 작년 8월 출시된 이후 신규 보증잔액이 2조8797억원에 달한다.
“주택연금 활용도 더 커질 것”
전문가들은 주택연금의 활용도가 더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주택연금의 노후소득보장효과 분석:1954년생을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1954년생 주택연금 가입자는 주택연금 가입을 통해 소득대체율을 26.2%포인트 끌어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미가입자도 지금 가입하면 34.6%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최경진 주택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퇴자뿐 아니라 예비 은퇴자들의 자산이 부동산에 집중돼 있으며 2030세대도 부동산 보유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며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부족한 노후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앞으로 주택연금을 많이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3월 기준 전국 가구당 평균 자산(5억253만원)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73.0%에 달한다.
다만 금리 인상이 예고돼 있어 향후 월 지급액이 더 늘어나긴 어렵다는 예상도 나온다. 금융사는 주금공이 발급한 보증서로 주택연금 가입자에게 대출 방식으로 연금을 지급한다. 대출 금리만큼 비용이 나가 월 지급액이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