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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무원하려면 주식 팔라고?"…안랩으로 살펴본 '백지신탁제' [류은혁의 기업분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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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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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인 출신들이 공직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는 뭘까. 재계에선 주식을 '백지신탁'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안철수 대통령인수위원회 위원장이 국무총리 자리를 고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각에선 '안랩 주식 때문에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실제 안랩이 장중 최고가를 찍었을 지난달 24일 기준으로 보면 안 위원장의 주식가치는 4064억원에 달했다.

    백지신탁 제도란 직무 수행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공직자가 직무 관련 주식을 보유한 경우 이를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하도록 함으로써 공무 수행 중에 특정 기업과 사적 이익이 충돌할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이다.

    A라는 공직 후보자가 바이오업체인 B사 주식을 보유한 상태에서 보건복지위원회 등 관련 부처에서 활동한다고 가정해보자. A후보자가 B사에 유리한 법안, 정책을 통과시키는 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 이를 막기 위해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하게 만든 것이다.
    백지신탁제도, 알고보면 공직 진출 장애물?
    안랩 지분을 18.6%(186만주) 보유한 안 위원장이 총리를 맡으면 안랩 주식을 매각하거나 금융기관에 백지신탁 해야 한다. 안 위원장은 백지신탁 부담 때문에 총리 자리를 고사한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일각에선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식을 처분하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등록 재산 공개 의무자 등 공직자 본인과 그 이해관계자는 3000만원 이상의 직무 관련 주식을 보유한 경우 임명 2개월 이내에 이를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해야 한다.

    대상은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국회의원 등 국가의 정무직공무원과 지방자치단체의 정무직공무원,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소속 4급 이상 공무원 등이다. 안 위원장이 이번이 아니더라도 추후 국무총리에 내정되면 2개월 이내에 주식을 처분하거나 백지신탁해야 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 제도가 기업인들의 공직 진출을 원천 봉쇄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백지신탁 과정에서 당사자나 이해관계자는 신탁재산의 관리·운용·처분에 관여하지 못한다는 점은 공직자를 꿈꾸는 기업인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백지신탁의 경우 관리·운용·처분에 관한 정보의 제공을 요구하지 못하고, 수탁기관도 정보를 제공하지 않도록 돼 있다. 자신의 주식이 얼마에 누구한테 팔았는 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백지신탁제도가 기업인 출신 공직 진출에 걸림돌이 된 사례는 그 전에도 있었다. 2017년 문재인 정권 당시 중소벤처기업부 초대 장관 인선 과정에서 백지신탁 때문에 장관 인사가 지연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또 박근혜 정부에선 중소기업청장으로 내정돼 발표까지 됐던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이 뒤늦게 백지신탁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돌연 사퇴하기도 했다. 황 내정자는 당시 사의를 표명한 이유와 관련해 "회사 주식을 백지신탁 해야 하는 점이 부담스러웠다"고 언급했다. 백지신탁제도가 사실상 기업인 출신의 공직 진출을 가로막는 진입장벽이 되고 있는 셈이다.
    안랩, 백지신탁 이슈에 웃고 울어…부작용 있을까
    상장사의 경우 주가가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2022년 대선 직전 7만원대에 불과하던 안랩 주가는 지난달 24일 장중 21만8500원까지 치솟았다. 11거래일 만에 3배 넘게 주가가 오른 것이다. 하지만 안 위원장이 총리직을 고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2만원대로 주저앉았다.

    주식시장에서 안랩이 급등한 이유를 명확히 알 수가 없다. 안 위원장의 주식 백지신탁이나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 가능성이 상승 재료가 됐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지만 누가 새로운 최대주주에 오르느냐에 따라 안랩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이나 회사 내부 직원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당연히 주가가 오르고 회사가 더 긍정적으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모두에게 좋지만, 그러질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최대주주인 안 위원장이 백지신탁을 통해 보유 주식을 매도했으면 누구에게 파는지 개입이 불가하다. 내정 2개월 이내 경영권을 붙인 주식을 블록딜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졸속 매각 등의 문제가 터져나올 가능성이 상당하다. 그 피해는 주주와 회사 내부 직원이 책임질 수 밖에 없다.

    통상적으로 매각 절차는 투자안내문인 티저레터(TM) 배포와 함께 대략의 수요를 확인한 후 잠재 원매자들과 비밀유지계약(NDA)를 맺고 기업설명서(IM)을 배포하며 자세하게 회사를 탐색할 기회를 준다.

    IM 배포 후 5~6주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논바인딩(구속력 없는 가격제안)을 통해 1차적으로 가격을 받고 이후 본입찰을 통해 바인딩 오퍼(구속력 있는 가격제안)를 받아 최종 협상대상자를 선정하게 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산업 등 정책에 따라 방향성이 정해지는 경제 분야의 경우 기업인 출신들의 공직자들이 큰 역할 해낼 가능성이 높다"며 "국가와 산업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때도 됐는데, 현행 백지신탁제도는 기업인의 공직 진출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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