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간 28일 만찬 회동은 정권 교체기에 촉발된 신·구 권력 갈등을 대부분 해소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당초 예정된 회동이 불발되면서 양측 모두 “더 이상 국민을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부담이 큰 상황이었다. 두 사람 간 회동에서 그간의 갈등은 표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나눴다”는 게 배석한 장제원 윤 당선인 비서실장의 말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양측이 부딪쳤던 현안에 대해선 문 대통령이 “적극 협조하겠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대신 문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는다는 국민들의 우려를 불식했다.
◆文 ‘집무실 이전’ 한발 물러서
그동안 양측이 충돌한 최대 현안은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공약이었다. 윤 당선인이 직접 지휘봉을 들고 발표한 공약에 대해 문 대통령이 “안보 공백이 우려된다”며 사실상 반대하자 정국이 급랭했다.장 실장은 이날 서울 통의동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연 브리핑에서 “자연스럽게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얘기가 나왔다”며 “문 대통령께서는 ‘집무실 이전 지역에 대한 판단은 차기 정부의 몫이라 생각하고 지금 정부는 정확한 이전 계획에 따른 예산을 면밀히 살펴 협조하겠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집무실 이전에 필요한 예비비를 국무회의에 상정할지 여부를 논의했느냐’는 질문엔 “그런 구체적인 얘기는 하지 않으셨다”며 “실무적으로 시기라든지, 이전 내용이라든지 이런 것을 서로 공유해 문 대통령께서 협조하겠다는 말씀으로 이해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에 대해 청와대가 “무리한 면이 있어 보인다”고 제동을 걸고 나선 것과 비교하면 입장을 번복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권은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기획재정부, 국방부 등 집무실 이전 실무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준 것으로 해석했다. 다만 “취임 첫날부터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집무를 보겠다”는 윤 당선인의 대국민 약속이 실현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장 실장은 ‘취임식 이전에 집무실 이전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두 분께서 시기까지 가능하다, 하지 않는다는 말은 없었다”고 했다.
◆추경 편성·인사 “실무적으로 논의”
윤 당선인의 1호 공약인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50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도 이번 회동의 핵심 의제로 꼽혔다. 전날까지만 해도 신용현 인수위 대변인이 “현 정부에서 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되기를 강력하게 요청한다”고 했지만, 청와대는 “재정당국과 국회의 논의를 지켜보겠다”며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장 실장은 ‘추경 편성 시점에 대해 공감대가 이뤄졌냐’는 질문에 “시기나 이런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는 하지 않았다”며 “필요성에 대해 두 분이 공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안 논의는 이철희 정무수석과 제가 실무 라인에서 협의해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실무적인 문제가 없다면 정부가 윤 당선인의 공약에 협조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핵심 쟁점은 추경에 필요한 재원을 빚을 발행하지 않고 기존 예산 구조조정으로 조달하는 인수위 계획이 실현 가능한지 여부다. 인수위는 국채 발행으로 재원을 조달할 경우 국채 시장 금리가 뛰면서 물가 관리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재정당국은 “대규모 예산 구조조정은 이해 관계자들의 극심한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며 “공약을 실행하려면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장 실장은 신·구 권력의 또 다른 갈등 요인이었던 임기 말 인사 문제에 대해선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이철희 정무수석과 장제원 실장이 잘 협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좌동욱/김인엽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