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통령들에겐 이상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취임할 무렵 크고 작은 위기가 닥쳤다는 점이다. 의욕적인 정책 공약을 실천하기엔 취임 초반 상황이 나빴다. 불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김대중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경제정책 측면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현대 한국 역사에서 획기적 변화를 예고한 인물이었다. 분배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의 경제정책은 DJ노믹스로 불렸다. 하지만 1997년 12월 18일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한국은 외환위기로 나라 전체가 휘청거렸다. DJ노믹스를 펼 기회조차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할 무렵엔 신용카드 사태가 발생했다. 여기에다 부동산 가격 급등이란 악재도 겹쳤다. 이명박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상이나 했겠는가. 언론인 출신 이장규 에어로케이홀딩스 대표는 《대통령의 경제학》에서 MB의 747정책은 이륙도 못하고 추락했다고 평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경기 침체 상황에서 임기를 시작했다. 경기부양이 급선무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 및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 와중에 집권했다. 미·중 충돌이 시작됐고 북한의 핵위협이 고조됐다.
한국의 대통령 중 상당수는 착각 속에서 임기를 마쳤다. 국민들이 자신의 공약에 높은 점수를 줘서 대통령으로 선출했다고 하는 착각이다. 기존 집권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따른 반대급부 성격이 더 컸지만 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노 대통령의 경제 실패 덕에 집권했다. 부동산 가격 급등이 핵심이다. 이 대통령은 하지만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것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었다고 생각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인 바탕이다. 하지만 석 달도 안돼 ‘광우병 사태’를 맞이했다. 나중에 이 사건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 대통령의 과신이 사태 발생에 한몫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문 대통령은 박 대통령이 일으킨 문제로 어부지리를 얻었다. 박 대통령이 이른바 국정농단으로 탄핵당하면서 사실상 청와대에 무혈입성했다. 문 대통령은 하지만 유권자들이 자신의 공약을 높이 샀다는 자기 확신에 빠져 지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소득주도성장 밀어붙이기, 세금으로 부동산시장 잡기, 탈원전 정책 등이었다. 자기 확신 또는 자기편 확신에 빠지면 필연적으로 남 또는 남의 편 얘기를 듣지 않는다. 경제학자들과 에너지 전문가들의 얘기는 뒷전일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전직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운이 없는 편이다. 한국은 여전히 코로나19 위기 와중에 있다. 지난해 반짝 반등했지만 올해는 성장률 예상치가 줄줄이 하향되고 있다.
윤 당선인도 언제든 착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인공지능(AI)이 아닌 감정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한계 때문이다. 유권자들이 공약을 보고 표를 줬다고 하는 자기 해석을 언제든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너무나 못해서 얻은 반대급부였다는 것이 솔직한 분석일 것이다. 대선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당이 단일화하면 승리할 것이란 예측이 근거다. 문 정부의 부동산 실정(失政)과 ‘내로남불’, 두 가지가 윤 후보를 대통령으로 이끈 핵심 요인이다.
윤 당선인은 모든 공약을 반드시 실천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려야 한다. 후보와 대통령은 다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광화문 청와대 시대나 과학기술 5대 강국,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등의 공약을 보고 윤 후보에게 표를 더 준 게 아니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 이전 문제로 국론을 또다시 분열시키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본인이 강조한 통합에도 어긋난다. 차분히 준비해서 할 일이다. 인기를 노린 포퓰리즘 정책도 펼쳐선 안 된다. 병사 월급 200만원이 대표적이다. 전기요금을 무조건 동결해서도 안 된다. 어차피 국민들이 낼 돈이다. 얘기를 잘 듣겠다고 했으니 참모들은 직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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