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새학기를 시작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의 새학기는 4월부터다. 대신 3월 일본의 초등학생 학부모와 조부모는 '란활'로 바쁜 시기다. 올해 신입생 뿐 아니라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자녀를 둔 부모와 조부모까지 가세하면서 일본의 란활은 점점 치열해지는 추세다.
란활은 란도셀 구매 활동의 일본식 준말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자녀나 손주에게 란도셀을 선물하는 활동이다.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초등학생은 란도셀을 메야한다'라는 규정이 없지만
일본 초등학생들은 '전부'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모두가 란도셀을 메고 등교한다.
란도셀은 원래 서양의 군인들이 메던 가방이다. 에도시대 말기 서양식 편제를 도입한 막부군이 란도셀도 수입했다. 란도셀이라는 단어는 네덜란드어 '란셀'에서 나왔다.
군인들의 가방이 초등생의 등교가방이 된 것은 1885년 왕실과 귀족들의 전용학교였던 가쿠슈인이 학용품을 옮기기 위한 수단으로 란도셀을 채택하면서다. 일본 초대 총리이자 초대 조선총독으로 안중근 의사에게 암살당한 이토 히로부미가 요시히토 왕세자(훗날 다이쇼 일왕)에게 선물한 란도셀이 1호로 기록돼 있다.
가쿠슈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사립학교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왕실과 귀족, 부유층 자제들만 다니는 학교로 남았다. 이들이 메는 란도셀은 서민에겐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그림의 떡이었다.
1950~1970년대 고도성장기를 맞아 일본인의 소득이 크게 늘어나면서 일반 가정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란도셀이 일반화했다고 요미우리어린이신문은 설명했다.
부모 뿐 아니라 조부모까지 란활에 가세하는 건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닛세이기초연구소에 따르면 2008년 3만5000엔이었던 란도셀 평균 가격은 2021년 5만5339엔(약 55만6340원)까지 올랐다.
평균 가격이 오르면서 지난해 일본의 란도셀 시장은 558억엔 규모로 2011년보다 1.4배 성장했다. 같은 기간 일본의 초등학교 1학년생은 9만명 줄었다. 구가 나오코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저출산의 영향으로 조부모와 부모가 자녀 1명에게 지출하는 금액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총무성의 가계조사에 따르면 2000년대 란도셀 구입시기는 입학 직전인 1~3월이 대부분이었다. 2010년대 들어 구입시기가 조금씩 빨라져 2015년부터는 오봉(추석과 비슷한 일본의 전통 명절) 귀성 때 조부모가 선물하는게 관행이 됐다.
입학 1년 반 전부터 카탈로그를 신청해 3월께 발매되는 신제품을 1년 전에 미리 구입하는 과열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 신입생과 내년 입학예정자가 동시에 란도셀 구입 경쟁을 벌이면서 발매 첫날 완판되는 모델도 드물지 않다.
"천연가죽으로 만들어진 수제품은 수량이 한정돼 있어 일찍 사두지 않으면 원하는 색상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란도셀은 '남학생은 검정색, 여학생은 빨강색'이 공식이었다. 2001년 일본 최대 유통회사 이온그룹이 24가지 색 란도셀을 한꺼번에 내놓으면서 공식이 깨졌다. 2021년 란도셀공업회 조사에 따르면 여학생이 선호하는 란도셀 색깔은 보라색과 연보라(22%), 빨강(21%), 분홍(19%) 순이었다.
남학생은 검정색이 61%로 여전히 압도적이지만 선호도가 1년새 9%포인트 줄었다. 대신 남색(17%)과 파란색(11%)이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트렌드는 경량화와 '젠더리스'다. 교과서 페이지수가 늘어나면서 지고 다녀야 하는 문구류가 무거워져서다. 남학생 10명 가운데 1명이 빨강색 란도셀을 찾는 추세도 성 구별이 없어지는 배경으로 꼽힌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