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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칼럼] 하이에크가 다시 생각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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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크 30주기에 부쳐

오늘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자유의 대변인’(이코노미스트誌)이었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서거 30주년이다. 그는 계획경제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자유를 짓누르는 노예의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공적인 개입에 필요한 지식은 각처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개인의 머릿속에 들어 있고 정부가 그런 지식을 전부 수집·가공·이용하는 건 불가하다는 이유에서다. 옛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개인에게 각자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추구할 광범위한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게 하이에크의 통찰이었다. 그렇게 해도 시장경제에는 혼란이 생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빈곤, 실업, 불황이나 저성장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생적인 힘이 생겨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번영의 원천은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한 하이에크를 다시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지금 고질적인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전대미문의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정부 주도가 아니라 민간 중심의 경제로 전환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다짐 때문이다. 윤 당선인의 말은 20세기 전반 이후 옛 소련과 동유럽을 지배했던 사회주의, 서구를 지배한 케인스주의와 복지 확대로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이 유린당하고 있던 시기에 하이에크가 갈파했던 말과 매우 흡사하다. 게다가 상황에 관한 진단도 매우 닮았다. 저성장, 일자리 참사, 양극화 심화, 1000조원의 나랏빚 등. 경제를 위기로 이끈 건 빚을 얻어서까지 추진한 퍼주기식 복지정책, 소득주도성장을 내걸고 밀어붙인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등 반(反)시장 정책이다.

좌파정권의 정책 실패는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다가 저지른 치명적 자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이에크는 정부는 부와 번영을 창출할 지적 능력이 없다는 걸 분명히 하면서 정부는 아는 척하지 말고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을 가로막는 규제를 풀고, 작은 정부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 6단체장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정부 역할은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에 방해되는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당선인의 말도 하이에크의 자유주의 개혁과 흡사하다.

그런데 오늘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자유주의의 한계로 지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금융위기는 자유주의가 아니라 주택시장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개입과 통화량을 무진장 확장한 정책 때문이었다. 좌파 이론가들이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자유주의를 걸고 넘어간 것이다. 1930년대 뉴딜정책의 예를 들어 정부 개입을 옹호하기도 한다. 루스벨트의 뉴딜로 대공황을 구출했다는 게 좌파의 시각이다. 하지만 대공황이 등장해 지속한 이유가 바로 정부 개입 때문이었다는 게 하이에크의 탁월한 인식이다. 정부의 ‘기업 때리기’가 시작됐고 정부 지출을 늘려만 갔다. 기업인들은 불안해서 투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하이에크가 말한 것을 들어 주지 않았다. 노(老)학자는 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다. 세상이 야속하게만 보였다. 하지만 그 무렵, 197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거머쥐었다. 우울증이 사라지고 생기도 되찾았다. 그 시기에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세계를 강타했다. 케인스가 엉망으로 만든 이 세상을 구할 자를 찾고 있었다.

1980년대 세계의 눈은 하이에크에게로 쏠렸다.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가 그를 등에 업고 자유주의 개혁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들은 규제를 혁파하고 파괴적인 노조 파워를 여지없이 무력화시켰다. 부실과 비효율의 온상이던 공기업을 민간에 되돌려줬다. 결과는 전대미문의 번영이었다. 물가가 잡혔고 고용과 소득도 급증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실용이 아니라 이념이고 그래서 이념이 중요하다는 하이에크의 인식이 입증되는 순간이다. 그가 지적했듯이 레이건 대통령과 대처 총리는 자유주의 신봉자였다.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그들의 개혁이 성공한 이유다. 하이에크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자유철학은 생생히 살아 있다. 윤 당선인도 성공하려면 그를 등에 업은 철저한 자유의 정치가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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