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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적인 여성'은 어떻게 나왔을까…[김동욱의 하이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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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적인 여성은 차고 넘칩니다. 비록 실제 생활에서가 아니라 TV 속 장면에 한정된 것 같긴 하지만 말입니다만….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가리지 않고, 순종적인 여성상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오디세우스가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끈기 있게 옷감을 짜는 페넬로페부터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 '위기의 주부들'까지 각종 문학작품과 영화, 드라마, 뉴스 등에는 '자발적 순종'을 택할 뿐 아니라 순종에서 만족감과 쾌락을 얻는 캐릭터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떨까요. 그리고 순종에 대한 고정관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또 순종은 어떤 의미를 지니며,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요.

젠더 갈등이 사회 문제로 부상한 현대 한국 사회에서 주목할만한 여성주의 관련 서적들이 잇달아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우선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에코리브르 출판사에서 선보인 '여성은 순종적으로 태어나지 않는다'(마농 가르시아 지음, 양영란 옮김)입니다.

프랑스 출신으로 미국 예일대에서 정치철학과 페미니즘 철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순종'이라는 현상을 분석해 사회적 성별에 따른 위계가 여성의 삶을 조련하는 방식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파격적'이라고 느껴지는 도발적인 문장들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서문에서부터 "열렬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여성조차도 자신에게 꽂히는 남성들의 '정복자적 시선'을 즐기고, 얌전하게 파트너의 품에 안겨 순종적인 대상이 되길 욕망한다"고 지적하는데요.

그런 현상이 빚어지는 배경에는 '성차별적 천성론'과 '순종에 대한 함구'가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바라봅니다.

그리고 '순종'이라는 현상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여성들이 자신에게 가해지는 권력에 대한 체념 또는 저항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순종은 적어도 적극적으로 지배에 항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에 저자는 남성의 지배를 '지배자'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순종하는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주관적 경험을 기술해 지배를 밑에서부터 살펴보는 것인데요.

여성의 순종을 연구 주제로 삼음으로써 여성의 경험과 여성의 삶에 귀를 기울이고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지레짐작으로 여성을 피해자나 잘못을 저지른 자, 수동적인 존재로 낙인찍지 않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내재적 접근으로 순종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며, 어떤 식으로 경험되는지를 어떤 선입견도 없이 설명하는 저자의 작업은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천년의상상이 선보인 '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김가을 지음)는 아버지의 폭력에 맞섰던 24살 여성의 내밀한 지적 통찰을 담은 책입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폭력(가정폭력)'의 기억을 되짚는 일은 진흙탕으로 들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저자는 무엇을 해야 이 폭력의 문제가 해결될지, 어떻게 해야 이 고통의 근원에 다가설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의존하고, 엄마는 심리적인 종속뿐 아니라 결혼제도라는 법적 굴레 탓에 '아버지 폭력'의 악순환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가 끊임없이 문제를 반복해 왔습니다.

"떠날 수가 없잖아. 갈 곳도 없고 돈도 없고. 동물원에 갇힌 동물도 갇혀 있다는 거 알면서 못 떠나잖아. 맞을 거 알아도 도망 못가. 나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세상은 말 되는 것만으로 이뤄져 있지 않아"라는 저자의 절규가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저자는 이제 가해자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과감하게 진실 공개에 나섭니다.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는 이제 풀릴 수 있는 것일까요. 책장을 넘기는 마음이 매우 무겁습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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