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는 지난 1959년 남극조약을 채택하고 서명한 미국, 영국, 호주 등을 포함한 12개 원초 서명국 가운데 한 나라다. 칠레는 우리가 남극에 첫 발을 내디딜 때 한국 남극연구의 첫 친구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남극연구를 지속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하는 남극 파트너다.
우리나라는 칠레와의 긴밀한 협조를 발판으로 1988년 남극 킹조지섬에 세종과학기지를 세우고 많은 연구성과를 쌓으며 남극 동반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남극협력’은 양국 정상회담에서 다루는 공식 외교 의제 중 하나로 포함되고 있다.
양국은 정부 차원의 고위급 ‘남극정책대화’를 정례화하는 등 서로가 공인한 주요 남극 파트너 국가가 되었다. 칠레가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등 남미 3개국만 남극정책 대화를 운영하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에 대한 칠레의 각별한 우정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한-칠레 협력관계는 2016년 2월 ‘한-칠레 남극 협력센터’가 개소하면서 더욱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파트너십으로 발전됐다. 두 국가는 협력센터를 기반으로 인류의 공동유산인 남극을 지키고 기후변화 등 지구적 현안에 대한 공동연구를 수행하는 데 책임을 다하기로 합의했다.
한-칠레 남극 협력센터는 남극세종과학기지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기지 안전운영과 쇄빙연구선 보급지원 거점이면서 양국 공동연구 수행의 협의창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협력센터를 매개로 우리나라 극지연구소(KOPRI)와 칠레 남극연구소(INACH)의 남극 협력 워크숍도 운영되고 있다. 이를 통해 협업 가능분야를 확인하고 양국 연구진 간 실질적인 공동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한-칠레 연구진은 남극반도 지역 내 온실기체를 중장기 모니터링해서 빠르게 온난화되고 있는 서남극이 지구 기후변화 완충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해양 퇴적물을 통해 수만 년 전 얼음과 바다의 상호작용을 재현하는 연구도 진행중이다.
각국 남극 기지에서 보고되는 외래종 곤충에 관한 연구는 독립 생태계인 남극환경을 보호하는 학술적 노력이다. 이는 인간활동에 의한 남극 환경변화의 일면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의의도 갖는다. 서남극해 해양오염과 해양생물 다양성에 관한 조사, 특히 어류 연구는 중장기 남극 수산자원 회복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최근 남극 킹조지섬에서 일어난 지진처럼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면 자연스럽게 한-칠레 연구진 간 협업이 논의된다. 그래서 한-칠레 남극협력의 미래는 밝다. 남극 환경을 규명하기 위해 출발한 양국의 과학협력은 전 지구 기후?환경변화라는 현안을 해결하는 공동 노력이자 자연재해로부터 함께 안전을 지키는 실천으로서 의미가 두텁다.
첫 정은 항상 애틋하다는 말이 있다. 양국의 수교 60주년을 맞아 한-칠레 우정의 다음 60년을 생각하게 된다. 양국 남극협력이 지구 현안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남극과 세계의 내일을 함께 가꾸는 파트너십으로 계속 성숙해나가기를 기대한다.
강성호 극지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