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한국은행 차기 총재 인사권을 문재인 대통령이 행사해야 한다고 17일 밝혔다. 인사권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넘기는 것은 "상식 밖의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새 정부와 임기가 같이 가는 한은 총재 자리에 대한 인사권을 고집하는 것을 놓고 '알박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날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MBC라디오에 출연해 한은 총재 지명권을 문 대통령이 행사할 것이냐는 질문에 "5월 9일까지 임기인데 인사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하는 것이지 누가 하냐"고 답했다. 한은 총재 지명권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넘긴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그것은 상식 밖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정해진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전날 한은 총재 인사권을 놓고 협의할 계획이었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문재인 대통령의 오찬 회동이 무산됐다. 만남이 무산된 배경으로 한은 총재 인사권 등을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것이 꼽힌다. 차기 총재 후보 정책·성향 등에서 청와대와 인수위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후임 한은 총재의 임기는 차기 정부의 임기 대부분과 겹친다. 청와대 일각에서도 문 대통령이 당선인과 상의해 후임 총재를 지명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며칠 새 청와대 내부에서 이 총재 후임 인선을 강행하는 의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한은 총재 내정과 국회 인사청문회, 임명까지는 통상 한 달 안팎이 걸린다. 이번주께 이 총재 후임자 내정이 진행돼야 다음달 14일 금통위 회의가 총재 공석 없이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인수위의 기싸움으로 다음달 총재 없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차기 한은 총재는 임기 내내 다음 정부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 재정을 관할하는 기획재정부, 거시건전성 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 등 정부 부처와의 여러 정책을 조합해야 한다. 통화정책과 재정·거시건전성정책이 엇박자 양상을 나타내면 정책 효과는 반감된다. 물가를 낮추려고 금리를 올렸는데, 정부가 재정 씀씀이를 늘리면 물가 상승 압력을 되레 높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책조합 등을 위해 당선인과 차기 총재 인사를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평가가 많다. 통화정책 수장에 '알박기 인사'를 하겠다고 청와대가 고집을 부릴 명분이 없다는 평가도 많다.
가뜩이나 통화정책을 둘러싼 여건도 심상찮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16일(현지시간) 정책금리를 3년 3개월 만에 0.25%를 인상하는 등 긴축 기조로 전환했다. 인플레이션 압력은 더 커지고 있다. 총재 공백이 커지거나 정책조합을 고려하지 않은 인물로 채워질 경우 통화정책의 실기(失期) 우려도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