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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호의 국제경제 읽기] 유가 해법 찾는 美…우리 기업엔 기회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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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원유·석탄·가스 수입금지 조치를 단행했지만, 원유 공급망 대안을 찾지 못해 고심에 빠졌다. 미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비중은 3%에 불과하지만 이미 시장에서는 유가가 올해 말 급등락을 반복하다 결국 배럴당 150~200달러에 이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연합의 제재 동참을 끌어내기도 쉽지 않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미 인플레 부담을 안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은 원유 수급 해결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란, 베네수엘라를 대안 카드로 접촉해 왔다.

미국은 영국 등과 함께 사우디와 UAE의 증산을 압박하고 있지만, 이들은 유가 하락 가능성에 대한 우려 및 인권 탄압을 둘러싼 서방과의 갈등, OPEC+ 체제 내 전략 파트너인 러시아를 의식하고 있어 간단치 않다.

미국은 이란을 국제 원유시장에 복귀시키기 위해 2015년 핵합의 복원을 위한 다자 간 협상을 주도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최근의 대러시아 제재를 러·이란 간 사업에 적용하지 말 것을 러시아가 요구함으로써 결렬 위기에 빠졌다.

남은 카드는 세계 최대 석유 매장국 베네수엘라다. 미국은 부정선거 등을 이유로 2019년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와 단교하고 600만 명에 육박하는 난민사태 속에서 야권의 후안 과이도 전 국회의장을 대통령으로 인정했지만, 지금은 관계 정상화를 위한 탈출구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미 정계와 석유업계는 이에 대해 ‘한쪽(러시아) 독재자의 원유수출 길을 막는 대신 다른 독재자의 원유수출 길을 터주는 모순된 외교’라고 비난하며, 차라리 국내 셰일업계를 회생시킬 것을 주문한다. 캐나다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폐기한, 미국을 관통하는 캐나다산 원유 파이프라인 사업인 ‘키스톤 XL’ 복구를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청정에너지 정책을 내건 바이든 대통령은 여전히 해외에서 해법을 찾을 기세이고, 명분 상실의 위기 속에서도 차악의 선택으로 베네수엘라와 타협해 전략적 실리를 도모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베네수엘라는 1990년대 하루 생산량이 320만 배럴에 달했던 OPEC 창설 회원국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단교 후 국가부도에 내몰리면서 미국 기업은 대부분 철수했고 석유 관련 시설들은 부실 관리, 약탈, 부패로 내버려져 최근 산유량은 하루 80만 배럴 수준까지 추락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제재받는 동안 중국과 쿠바 등지에 원유를 수출하고, 러시아로부터 석유매매대금 결제 우회 지원, 이란으로부터는 중질유 희석 기술 지원을 받으며 미국과 더 멀어졌다. 최근에는 원유를 중개상에 헐값에 판매해 수익이 줄어든 데다 서방의 대러시아 금융제재로 자금 순환이 더 어려워지자 마두로 정부는 돌연 미국에 유화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즉, 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원유 및 가스 부문의 국유자산 민영화와 개발권 허용을 제시하고, 억류했던 미국인 7명 중 2명을 석방한 뒤 미국의 화답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베네수엘라의 산유량을 과거 수준까지 끌어올리려면 향후 5년간 150억달러의 투자가 필요해 단기 해답은 될 수 없지만, 시장에는 긍정적 신호를 보낼 수 있다. 그보다 미국으로서는 러시아와 중국의 궤도권에서 베네수엘라를 떼어내 자신의 세력권으로 되돌릴 인센티브가 생긴다. 특히 미국이 인정한 과이도 야권 세력은 극심한 분열상을 보이며 2020년 선거를 보이콧해 법적 지위도 애매해졌다. 미국은 지난 2월 마두로 정부가 민주화를 향한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일 경우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해 셰브런 등 관련 업계는 벌써 사업 재개 준비를 하고 있다. 현실주의 외교의 한 단면이다.

한국도 2019년 이후 베네수엘라와의 관계를 동결한 상태다.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했던 우리나라의 엔지니어링 부문 기업은 거의 모두 철수했고, 양자 간 총무역은 고점 대비 90%나 축소됐다. 중남미지역 경제 규모 3위권이던 베네수엘라에 다시 인프라 확충 사업 붐이 일어난다면 우리 기업들에 가뭄 속의 단비가 되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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