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박빙의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면서 몇 가지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첫째는 여전히 심각한 지역 갈등 구도다. 호남 지역의 몰표는 여전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누리고 나서도 아직 남아 있는 한이 그렇게 많은 것일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간 약 10%의 표가 제발 젊은이들의 표였기를 바라며, 그들이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될 땐 지역 갈등이라는 단어가 사라졌기를 바랄 뿐이다.
두 번째 충격은 젠더 갈등이다. 윤 당선인은 20대 남성에게 얻은 표를 고스란히 20대 여성에게 잃어버렸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0대 남성을 끌어안을 때 속으로 20대 여성은 어쩌라고 했다. 20대 남성도, 여성도 할 말이 많다. 젠더의 차이를 구분하는 게 아니라 남녀가 함께 헤쳐 나갈 길을 제시하는 게 옳은 정치다. 물론 무척 어려운 과제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이 머리 싸매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가장 큰 충격은 이 정도로 우리 국민이 공유하는 가치가 없는지였다. 한쪽이 정의하는 도덕과 공정, 상식을 다른 쪽에서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게 드러났다. 마치 19세기 영국 정치인인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당시 영국 사회를 ‘두 개의 국민들’로 표현한 것과 마찬가지다. 디즈레일리의 두 개의 국민들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었지만, 우리 사회의 두 개의 국민들은 단순히 물질적 표현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근본적으로는 마음의 상처가 문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한 많은 생을 언급하며 지지를 호소했는데 그게 먹혀들었다고 생각된다. 우리 국민의 절반가량은 한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말이다. 가난해도 남 탓하지 않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어도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개인적 성향이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 우리 현대사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 100년 동안 식민지 경험과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전쟁, 권위주의적 국가와 급속한 경제 발전 등이 겹겹이 쌓여 이 심각한 병리 현상을 야기했다. 선진국들이 수백 년 동안 천천히 겪은 것을 우리는 단기간에 경험하느라 생긴 현상이다. 역사는 굽이굽이 돌아가는 한 줄기 강물과 같다. 강물이 급격한 단애를 만나면 폭포가 돼버린다. 언젠가 이 급격한 폭포수가 다시 잔잔한 강물로 흐르기를 바랄 뿐이다.
이 어려운 정국에서 윤 당선인은 새 정부를 꾸리고 5년간 나라를 책임져야 한다. 너무 뻔한 얘기지만 무엇보다도 국민 통합이 절실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상식이 무너졌고 그 때문에 화병 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의 발걸음을 떼야 한다. 윤 당선인은 가장 닮고 싶은 인물로 윈스턴 처칠을 들었다. 처칠은 통합을 주도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한쪽을 지지한 1400만 유권자가 모든 지혜와 미덕을 가졌고, 다른 쪽을 지지한 비슷한 수의 유권자가 전부 바보 멍청이에 악당일 리는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통합의 정치인인 처칠조차 재원 확보가 안 된 복지정책에는 강력히 반대했다. 선거 기간 동안 양측이 함부로 내건 포퓰리즘적 공약은 무시해도 좋다. 지금 우리가 해결할 기본 문제는 나라의 체력을 다시 강건하게 만드는 일이다. 부동산, 세금, 기업 규제, 탈원전 등 문재인 정권이 저지른 잘못을 하루 빨리 바로잡고 고갈된 국력을 회복해야 한다. 외교 안보의 심각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마지막으로 윤 당선인에게 당부할 것은 제발 제대로 된 사람을 앉히라는 것이다. 처칠에게는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 이번 기회에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이나 모두 그동안 누릴 대로 누린 정치꾼들을 퇴장시켜 환골탈태하기를 바란다. 172석 야대의 국회에서 윤 당선인이 제일 먼저 겪을 난관은 정부 구성일 것이다. 제발 논공행상 따위 던져버리고 정파를 떠나 유능한 인재를 고루 등용하기 바란다.
그래서 골수 좌파조차 딴지 걸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정부를 구성하기 바란다. 일단 그 선을 넘기면 그에게 표를 주지 않았던 사람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할 것이다. 처칠은 국가의 힘이 궁극적으로 결집력과 목표 의식에 달려 있음을 가르쳐줬다. 윤 당선인이 리더십을 발휘해 처칠의 ‘반의 반’이라도 따라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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