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바이오시밀러=한국’ 공식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전통 제약사에 그치지 않고 신흥 강자들까지 바이오시밀러 제품을 앞다퉈 내놓으며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인도 업체까지 진출하면서 레드오션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휴미라, 복제약만 7개…경쟁 구도 치열
7일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바이오시밀러 품목 허가를 처음 내준 2015년 이후 총 34개 바이오시밀러가 허가를 받았다. 이 중 화이자가 가장 많은 7개 바이오시밀러 품목 허가를 받았다.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암젠(각 5개), 마일란과 산도즈(각 4개), 셀트리온(3개)이 뒤를 이었다.첫 품목 허가 후 5년차인 2019년까지만 해도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셀트리온,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국내 업체가 주도하다시피 했다. 블록버스터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인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의 FDA 품목 허가는 셀트리온(2016년)이 가장 먼저 받아냈고, 삼성바이오에피스(2017년)가 두 번째였다. 유방암 치료제 ‘허셉틴’,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의 바이오시밀러도 국내 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했다.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런 선점 효과는 시들해지고 있다. 휴미라만 해도 FDA에서 허가받은 바이오시밀러 제품이 7개에 이른다. 허셉틴 바이오시밀러도 5개가 나왔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앞다퉈 품목 허가를 받아낸 레미케이드는 4개 제품이 경쟁을 벌이는 시장이 됐다. 김지운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 연구원은 “2019년을 기점으로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경쟁 구도에 변화가 왔다”고 했다.
화이자·암젠 등 글로벌 제약사 ‘속도전’
변화를 주도한 주인공은 화이자 암젠 등 미국 제약·바이오 기업이다. 2018년까지 2개의 바이오시밀러(레미케이드, 뉴포젠)를 내놓는 데 그쳤던 화이자는 2019년에만 4개(허셉틴, 아바스틴, 리툭산, 휴미라)를 쏟아냈다. 그해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총 3건을 허가받는 데 그쳤다. 셀트리온은 2018년 리툭산, 허셉틴 이후 FDA 허가를 받은 바이오시밀러가 없다.반면 바이오시밀러 제품을 내놓은 업체는 화이자, 마일란에 그치지 않고 암젠, 일라이릴리, 코헤러스바이오사이언스, 암닐파마슈티컬즈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는 “정맥에 주사하는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 됐다”며 “웬만한 바이오시밀러는 중국과 인도 제약사들도 만들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고 했다.
지각변동 조짐…M&A·지분 매각 활발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 구도에 지각변동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경쟁 심화 속에 사업 효율화 전략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다국적 제약사인 비아트리스는 최근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인도 제약사 바이오콘에 33억3500만달러에 매각했다. 비아트리스는 화이자의 특허만료 의약품 사업부(화이자업존)와 제네릭·바이오시밀러 강자인 마일란의 합병으로 2020년 출범했다. 비아트리스가 제네릭 사업 강화를 위해 경쟁이 심화하는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떼어내 바이오콘에 매각한 셈이다.
노바티스도 제네릭·바이오시밀러 사업부인 산도즈의 매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제네릭 의약품 약가 인하 압박에 따른 수익 악화 속에 바이오시밀러 사업 경쟁 상황도 이런 판단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바이오젠은 10년간 보유해 온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전량을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매각하기로 한 바 있다.
김 연구원은 “국내 업체들이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존 항체 치료제에만 머물 게 아니라 세포·유전자 치료제 같은 새로운 분야의 바이오시밀러 개발로 차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