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35억달러.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가 추정한 지난해 전 세계 반도체 매출 규모다. 전년 대비 25% 늘어난 수치로, 반도체 매출이 5000억달러를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반도체 시장이 이렇게 호황이었음에도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국내 중소형 팹리스는 지난해 적자를 지속하거나 적자로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동운아나텍은 지난해 연간 매출 506억원, 영업손실 11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707억원 대비 28.3% 감소했고 23억원이던 영업이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아이앤씨는 작년 매출이 299억원으로, 1년 전보다 30.8% 늘어났다. 그러나 3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 적자를 지속했다. 또 다른 팹리스 티엘아이는 지난해 매출이 308억원으로, 전년 대비 16% 감소했다. 영업손실은 64억원으로, 전년에 이어 적자를 지속했다.
국내 중소형 팹리스가 반도체 호황에서 소외된 것은 ‘규모의 경제’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 팹리스 업체 대표는 “영세한 데다 제품 및 고객 다변화가 안 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규모가 작기 때문에 작년 같은 반도체 호황 때 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해 줄 수 있는 파운드리를 적정 가격에 확보하기 어려웠던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파운드리는 팹리스가 설계한 전력반도체(PMIC), 디스플레이구동칩(DDI),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등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기업이다. 지난해 반도체 호황으로 파운드리는 고객을 골라 받아야 할 정도로 특수를 누렸다.
동운아나텍은 스마트폰 시장이 전방산업인 가운데 국내 광학부품 기업이 매출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난해 미국 스마트폰 시장 재진입을 추진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회사 측은 “스마트폰 업황이 부진해 매출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2017~2019년 3년 연속 영업손실을 낸 데 이어 2020년 소규모 흑자(23억원)로 돌아섰지만, 1년 만에 다시 적자 늪에 빠졌다. 아이앤씨는 범용 지능형 검침 인프라 등 스마트에너지 사업 매출 비중이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 티엘아이는 액정표시장치(LCD) 패널에 들어가는 타이밍 컨트롤러 및 드라이버 IC가 주력이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뉴스